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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가지 않은 길 역사 및 기타학문 리뷰


변화의 순간은 우리 곁에 수도 없이 닥쳐온다. 다만 열려 있고 깨어있는 자각이 없으면, 뒤늦게 지나가버리고만 기회의 순간을 통탄하게 될 뿐이다. 이런 변화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치지 않으려면, 성공했던 역사만큼이나 아쉬웠던 역사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본문 45)

역사(History)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이기도 하며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역동적인 옛날 이야기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달려들어 연구해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학문일 것이다하지만 무엇이 됐든 간에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있는 과정이며한편으로는 중요하다이 책 또한 그런 시각에서 쓰인 책이라 할 수 있다조선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전공자든 비전공자든관심이 있든 없든...조선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매우 진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조선사 전공자가 아니다저자는 고구려 전공자로 그간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던 김용만으로그의 폭넓은 시각으로 쓰인 조선사 관련 서적이라 읽기 전부터 내심 기대가 됐다저자는 서문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걸고조선이 걸었던 길을 가감 없이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그리고 단순히 만약~조선이 그랬다면이라는 if 식의 흥미위주 접근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고현재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책은 크게 4개의 주제로 구분된다. <활짝 피지 못한 조선문명의 기대주들>, <기득권을 위해 변용된 유교의 폐해>,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생활모순>, <잃어버린 자주·자립·자강의 꿈개인적으로 조선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지금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조선사에서 항상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있었는데이 책에서 언급된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묘하게 근현대 한국사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고질병같은 부분이라 더 정감(?)이 간다고나 할까암튼 몇몇 내용들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한가지만 얘기하자면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이 유교가 제자백가 시절의 (원시유교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송대 이후 공고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주희에 의해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간우리에게 성리학으로 익숙한 그 유교를 말한다중국은 높고크며조선은 그보다 낮고 작다종법적 질서에 따라 중국은 천자가 있는 천하의 중심이며조선은 그 천하관에 속한 말 잘 듣는 제후국이어야(Must do it!) 했다더 나아가 유교가 말하는 교리 중에서 사대부(양반)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취사선택하는 바람에 이현령 비현령’ 식의 정책이 판을 쳤고편협하고 획일적인 사회로 방향을 강요하는데 유교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지도를 만들었던 조선이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세계 지리에 대한 관심은 쇠퇴했고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갔다화약과 함포 또한 마찬가지다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화약과 함포라고 했을 때 누구나 이순신과 거북선을 떠올릴 것이다(조금 더 공부한 사람은 최무선까지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 또는 해양세력이 조선사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사라졌다김지남이 청나라에서 극비로 배워온 염초제조법도 조선에서는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고함선이나 화포의 개발에 무감각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은분리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조선 초기 명나라는 금과 은을 꾸준히 조공으로 받아갔고조선에서는 금과 은의 생산량을 늘리는 길 대신 광업을 억제하고 금은 사치 풍조를 비난하는 길을 택한다연산군 시절 개발된 연은분리법은 조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으로 건너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주의가 지배층에게는 적용되지 않고일반 백성에게만 강조되는 바람에 잘못된 정책이 입안되고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로 넘어갔다유교가 사회에 잘못 적용된 경우는 건축물에도 적용되었다유교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종법적 질서로 인해 조선은 스스로를 명보다 작다고 여겼고거대 건축물을 조성하지 않았다오죽하면 광개토태왕비를 발견하고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금나라 황제의 것으로 여겼겠는가패배주의에 젖어들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잠재력을 잃어버린 결과인 셈이다.

이제 저자가 왜 첫 번째 주제의 말미에 온돌을 넣었는지 이해가 좀 됐다(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세계 최고의 지도를 만들고뛰어난 화약과 함선을 만들고연은분리법도 개발했던 조선이었지만 그게 뭐?? 그래서?? 온돌도 마찬가지다우리는 온돌하면 대표적인 전통건축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지만저자는 연료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무제한에 가까울만큼 나무를 소비하는 온돌은 오히려 해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리고 저자는 온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소개하고 알려야만 비로소 온돌에 대해 올바른 시각이 정립된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했지만번번히 좌절을 겪었던 사례도 소개하고 있었다순간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신토불이가 한창 유행했던 때가 떠올랐다.

시작부터 저자는 조선의 민낯을 드러내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었다팔만대장경이나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술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도 않았다(마치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조선이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하지만못 한 것은 못 했다고도 분명히 말하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문제점은 계속 지적됐다두 번째 주제에서는 과거시험과 족보사대봉사덕치사상조선의 학구열 등이 다뤄지고 있었다학식을 갖춘 훌륭한 인재를 뽑겠다는 과거시험은 어느 샌가 신분 획득의 자격증 시험으로 변모했고당연히 인재의 수준도 떨어지게 되었다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과거시험 말고 다른 활로를 열어주었더라면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더 이상 과거시험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선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편협된 길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저자는 2016년 짐 로저스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하도록 시행되는 제도의 문제점을 재삼 지적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과 함께 족보는 사대부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로 변모하였다모계 대신 부계가 강조되고외가 대신 친가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이 중시되었으며이는 자연스레 조선 후기 왜 갑자기 양반이 늘어났는지를 알게 해준다현대 한국인의 조상 중에는 명재상이나 청백리도 있었지만범죄자매국노기생외국인노비 등도 있었을 것이라고 과감히(?) 얘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속이 시원해졌다고나 할까어느 누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족보를 지나면서 저자는 좀 더 과감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저자는 사대봉사가 忠孝에 의거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세습 봉작을 받아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고자 했던 사대부들의 욕심 때문에 생겨났다고 콕 짚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가문 내에 관리로 임명되는 사람이 있으면가문 내에 누군가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팔아 온 가문이 덕을 보는 이상한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고사대부들은 더더욱 쓸떼없는 사대봉사즉 제사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우리는 불과 몇 백 년 전 사대부들의 과욕으로 생겨난 제사를 마치 오랜 전통인양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 셈이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재밌는 점은 조상들에 대한 의미 없는 제사에 집착했던 당시 양반들이 유교의 덕치사상에 경도되어 탁상공론만 일삼았다는 점이다덕치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나라가 보존되고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 전개가 자연스레 통용되던 시대가 바로 조선이었다중세 유럽을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면중세 이후 조선은 유교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한편두 번째 주제 말미에서 저자는 조선의 백성들이 갖고 있던 엄청난 학구열을 소개하고 있다과거시험이 성공의 유일한 길로 인식되면서 어찌 보면 島嶼 지역의 백성들조차 엄청난 학구열을 지녔다는 것은 긍정적인 낙수효과로도 볼 수 있다하지만 역시 그뿐이다백성들이 공부해서 기득권층으로 발돋움하는 길은 거의 없었다부와 신분의 세습이 지속되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고되풀이되는 사회구조는 보다 공고해졌다오늘날 대학에 나오고 석박사를 취득해도 놀고 있는 고학력자가 많은 것을 보면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이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축제와 사라진 제천행사모피의 사치가 불러온 우울한 결과황칠나무가 사라진 이유노비제도와 과부재가금지법 등이 언급되고 있다여기서도 문제는 유교였다유교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서고려시대 때 지내오던 팔관회그 이전부터 지내던 각종 제천행사와 각종 마을축제는 사라지고 말았다축제는 사라지고 설날한식단오추석 때 성묘하는 유교적 제사의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축제와 제천행사가 사라지면서 상하가 분리되었다오늘날 모 정치인이 국민들을 개돼지로 인식했던 것처럼 조선시대 양반들도 그러했던 것이다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고조선은 무조건 중국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두 동강냈다이런 것들이 오늘날 新 계급주의의 근원은 아닐까?

조선 지배층이 과시할 때 경쟁적으로 소비했던 모피 값으로 흘러갔던 대부분의 재물이 만주족의 興起에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고조선 때만 해도 모피 생산-유통의 중심지였고그 이후 고구려나 발해 또한 모피 생산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순간 생산자와 소비자가 뒤바뀌게 된 셈이다단순히 사치를 일삼았다는 것을 벗어나 망국의 지름길을 걸었던 셈이다그와 더불어 황칠나무 또한 이익을 주는 특작물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대상이 되어버리자 백성들은 황칠나무를 찍어 넘겼고황칠나무 생산은 그 전통이 끊기고 만다하지만 홍삼은 돈이 되기에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단순한 이치가 아닌가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단순한 이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시한번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사상 최고의 聖君으로 꼽는 세종 때문에 조선의 노비 제도가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병자호란 이후 제대로 가정과 나라를 지키지 못한 찌질한 남자들이 오히려 피해자이자 동족인 여자들을 인격 살해했다고 말이다그러면서 저자는 위안부 박물관의 부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옆 독립공원이 지정되자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이 이를 반대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탄한다독립운동가만 고귀하고 위대하며어쩔 수 없이 끌려가 한세대를 치욕과 어려움 속에서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불결하며 수치스럽고 부끄럽단 말인가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뿌리 깊은 유교주의적 시각이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주제에서 저자는 양성지문순득을 비롯해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의 사례 등을 통해 조선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었다양성지는 개인적으로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선의 정치가다물론『책에 미친 바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재는 많았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양성지만큼 정책의 중심부에 가까웠던 이는 없었으며그런 만큼 더 안타까운 이도 없었다문순득처럼 원치 않게 세계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조선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조선에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인재를 받아들일 여유와 시스템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런 나라가 500년이나 지속되면서 남긴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너무나도 깊게 뿌리박혀 있다.

책의 마지막으로 저자는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를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최근의 대한민국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들지 않는가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아니 정치인들 중에서 과연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주·자립·자강을 잘 실현하고 있다고 느낄까아니그러지 못한다고 미리 답을 정해놓고 친미는 종북이니친중이니 떠들어대지 않을까꼭 선조처럼 分朝를 만들고 중국에 빌붙어 내 백성내 강토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다스스로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에 젖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것 또한 선조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 것이다.

저자는 회전목마를 타듯이 강약을 조절하며 조선을 비판하면서칭찬하면서 어르고 달랬다개인적으로 조선사를 싫어하는 필자가 책을 썼다면 시종일관 강하게 비판만 했을 것이다그걸 참아내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하지만 저자는 그 와중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강하게 얘기할 때는 얘기하고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분투했다물론 잘못 이해된 유교가 전체 사회를 지배했던 조선에서 칭찬받을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관심거리 이외에 더 발전적인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중국화하는 일본: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을 보면 그 책의 저자는 오히려 조선이야말로 중국화(선진화)가 일찍 된 나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물론 필자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조선이야말로 小中華에 가장 걸맞는 국가가 아니었을까그러면서도 선진화라고 말하는 중국화의 긍정적인 요소는 오히려 배제하고나쁜 것만 배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씁쓸했다.

이 책을 읽고 곰곰이 되새겨보니 현재 대한민국에는 조선의 잔상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저자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조선이 잘못한 것을 한시라도 빨리 인지하고 제대로 바라보자그리고 잘한 것만 기억하지 말고 잘못했던 것을 되풀이하지 말자!! 과거의 성공 요인이 현재에 반드시 성공 요인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하지만 과거의 실패 원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미래에도 실패 요인이 되는 법이다그러면 우리는 조선이 걸었던 길특히 망국과 식민지배한국전쟁과 분단국가의 길은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지난 주말 색시와 함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방문해 여기저기 유교의 위대함(?)과 전통이 이어지게 된 자랑스러움(?)을 한껏 느끼고 나니 더 많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다우리는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잘잘못을 분별하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지침으로 삼곤 하는데이 책 또한 우리에게 그런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안학궁의 축조시기는? 고구려사

현재 평양에 소재하는 안학궁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고구려 전기의 평양성, 그리고 고구려 말기의 별궁, 마지막으로 고려시대의 별도 등이 그것인데, 사실 저는 안학궁에 대한 연대 논란이 있다는 것을 대학교 3학년, 그러니깐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났을 때죠. 모 학회에서 주관하던 학술대회에 갔을때 일본인 학자(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가 그렇게 주장을 하자(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 학자는 그때 새로운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있었던 주장을 정리해 발표했던 것 같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몇몇 국내 학자들이 심하게(?) 반발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안학궁은 당연히 고구려 후기 도성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그 이후 몇몇 논문들을 살펴보고, 주변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쓴 이들도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어? 이거 생각 외로 심각하게 살펴봐야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 최근에 <고구려 기와>를 중심으로 안학궁 축조시기를 살펴본 논문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왕궁과 같이 기와가 다량으로 쓰이는 건물의 경우, 기와를 통한 편년은 매우 유의미하기 때문에, 고고학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은 둘러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논자는 먼저 그동안 고구려 기와로 알려진 것들을 싹 정리해서 분류를 합니다. 그렇게 분류된 고구려 기와는 총 3,200여점이고, 이를 몇몇 기준에 따라 선별합니다. 먼저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 검토를 통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와, 고구려 기와와 기술적 속성이 일치하는 집안 및 평양지역(수도권) 출토의 기와 등으로 세분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논자는 4장에서 고구려 기와의 특징을 일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기와의 문양과 제작기법(특히 접합기법)이 주된 분류기준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수막새 접합기법>의 경우, 기존에 명문과 문양의 변화만을 편년의 판단근거로 삼은 것에 더해 하나의 기준을 더 제시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5장에서 안학궁의 고구려 기와에 대해 정리합니다. 먼저 기존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기 평양설의 근거 : 가장 기술적으로 발달한 <청회색>의 기와가 왕릉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적석총 및 도성유적에서만 사용된다. 즉, 청화색 기와가 출토되는 안학궁은 고구려의 전기 평양성이며, 태왕릉이나 장군총 조영 당시의 기와와 동시기로 판단된다.

2. 고구려 말기 별궁의 근거 : 집안지역 적석총에서 출토되는 복선연화문 수막새와 동형의 수막새가 안학궁에서 발견되지 않고,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 및 암막색와 같이 주연부에 연주문양이 표현된 것이 한반도에서 유행하는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이다.

3. 고려시대 별도의 근거 : 문양부가 있는 암막새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제작된다. 한편, 傳 만월대 출토 암막새가 안학궁 출토품과 문양 구성이 유사한데, 대동강 북쪽의 안학궁이 통일신라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지역의 와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려볼 수도 없고, 고려시대로 봐야 적절하다(부여 금강사지 출토 암막새와 비교해 이를 고려로 봤다고 하는데, 정작 금강사지 출토품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생략됐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이에 논자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와 고구려 기와의 일반적인 특징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합니다(고려시대 기와와의 비교가 이뤄지면 보다 정확한 안학궁 축조시기가 밝혀질텐데, 그건 추후 논고로 하겠다고도 하고요). 앞서 언급했듯이 논자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부분은 안학궁 출토 수막새의 문양적 특징과 제작기법상의 특징 2가지입니다. 

1. 문양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는 시문된 문양에 의해 주문인 연화문과 변간에 연꽃 변형문이 확인되는 <복합연화문 수막새>, 주문인 연화문양만 와당면에 배치된 <연화문 수막새> 이 2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복합연화문 수막새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고구려 복합연화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 연화문 수막새의 경우는 고구려의 것과 유사한 것도 있지만, 역시 다른 것도 있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2. 제작기법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수막새는 주로 3가지의 긁기에 의한 제작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논문의 중반에 언급되는데,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수키와를 와당부의 뒷면에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지 않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긁어내는 기법 1(복선연화문, 복합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뒷면을 일정한 폭을 가지는 도구를 이용해서 긁어내는 기법 2(복선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는 빗상의 도구, 즉 다치구를 이용해 뒷면을 긁어내는 기법 3(권운문 수막새를 제외한 모든 수막새에서 확인) 이렇게 3가지 기법이 확인된다고 한다. 하지만 안학궁에서 확인된 수막새는 모두 와당부 뒷면에 동심원상의 병행하는 두 줄의 홈이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분명히 고구려의 일반적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앞서 문양만 놓고 봤을때 고구려 것과 비슷하다고 분류했던 것조차도 제작기법만 놓고 보면 분명히 고구려 것이 아니게 된다고 한다.

물론 논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의 편년을 얘기한 것이므로 이것이 안학궁 축조시기와 100% 직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와는 처음 얹은 뒤 지속적으로 개보축을 하면서 수리해서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게 정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학궁에서 출토된 다수의 수막새의 제작시기가 고구려 멸망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분들도 한번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

해당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홍규, 2014,「고구려 기와의 분류와 특징에 관한 일고찰」『선사와 고대』41, 한국고대학회.

(파일 용량이 크다고 업로드가 안 되네요. 이런건 다음이나 네이버보다 확실히 이글루스가 불편한듯 합니다. T.T)


고고학과 통계학

고고학에서 통계학은 상당히 중요한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그와 관련한 개설서(클릭)도 있는만큼 전통고고학이 주류인 한국 고고학계 내에서도 통계학은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인장의 지도교수님도 석사 수업에서 항상 통계학 수업을 1번씩은 하시는데, 당장 그와 관련된 논문을 작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방법을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이는게 분명하긴 하다.

이는 주로 유학파 출신의 서울대 선생님들에 의해 많이 소개되었는데, 위에 링크로 소개한 책의 번역가인 김범철 선생님(충남대 교수)이라든가 고고학 관련한 학제간융합연구사업을 담당(클릭)하는 김장석 선생님(서울대 교수)이 대표적인 연구자라고 얘기할 수 있을듯 하다(두분 다 청동기시대 연구, 일부 초기철기시대까지 연구 범위 확장). 특히 청동기시대 토기 및 취락 연구에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아마 문헌이라는 보조수단의 有無가 선사시대 연구자로 하여금 다른 보조수단을 찾게끔 하는 것 같다). 기존에 고고학에서 차용한 자연과학 혹은 사회과학쪽 연구 방법론이라고 하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같은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밖에 각종 자연과학분석법이 도입되었는데, 이와 함께 도입된 중요한 연구방법론 중 하나가 통계학이 아닐까 싶다. 특히 토기 연구에서 통계학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토기>라는 녀석이 특정 장인집단, 특정 장인의 습관이 스며든 인공적인 조형물이라고 했을때 파편 형태로 확인된 토기를 통계학적으로 분석 가능하다면, 일부분만 갖고도 전체의 내용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평으로 소개했던『토기연구법』이라는 책의 말미에 관련 내용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통계학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닌데, 그건 바로 관련 자료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서 적절한 자료가 있길래 급하게 소개하는 바이다.

디씨에 올라온 글인데(클릭), 2차 대전 중 미 해군에서 항공기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장갑을 추가할 부위를 정하려는 목적에서 작전 중 피격된 항공기의 피탄 분포를 조사했고, 그 결과 피탄이 많이 된 부분을 확인했다고 한다(기체의 전체를 다 두껍게 강화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기체가 무거워지게 되고 결국 기동력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 필요한 양의 장갑을 효율적으로 덧대야만 했다). 하지만 연구 책임자인 오스트리아 출신 통계학자 아브라함 발드는 피탄이 집중된 부위가 아니라 피탄이 거의 없는 부위에 장갑을 추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상식적으로 좀 의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탄이 많이 된 부분이 당연히 공격을 많이 받았을테고, 그쪽에 장갑을 덧대는게 상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 발드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고 한다.

우리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기체들은 비판되고도 살아남아 귀환한 기체임. 그말은 그 부분은 피탄이 집중되고도 기체가 생환할 수 있다는 소리임. 그러므로 피탄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오히려 강화해야만 함.

결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아마 피탄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에 장갑을 덧댄 뒤에 생환한 기체를 살펴봤을때, 그 부분에 드디어 피탄 흔적이 확인되기 시작했다면, 아브라함 발드의 주장은 사실로 증명이 됐을 것이다. 이 사례는 통계학에서 편향된 모집단을 토대로 확률을 계산하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즉, 통계 수치를 계산된 <양적 수치>만 갖고 비교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 즉, 집계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수치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끄집어내서 원하는 결론을 도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틀리지 않는 법』이라는 책에도 소개되었다니 참고하면 좋을듯 하다(아직 본인도 그 책은 안 읽어봤다). 그밖에 아브라함 발드의 연구법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치명적 실수를 위대한 성공으로 바꾸는 블랙박스 시크릿』이라는 책도 참고하면 좋을듯 싶다(이 역시 본인은 아직 안 봤으니 책 내용에 대한 평가는 추후로 미루고자 한다).

통계학에 대해 지도교수님은 <자료를 어떻게 조작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조작>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造作으로 썼을때 '어떤 일을 사실인 듯이 꾸며 만듦 / 진짜를 본떠서 가짜를 만듦 / 지어서 만듦'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操作이라는 의미로 썼을때는 '기계 따위를 일정한 방식에 따라 다루어 움직임 / 작업 따위를 잘 처리하여 행함'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도교수님께 한문으로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영어 의미를 살펴봤을때, 'operate' 혹은 'control', 'handle'의 의미도 있지만, 'manufacture' 혹은 'invent'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두 단어의 의미를 다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듯 싶다. 위의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어떤 방법으로 수집된 계측치를 어떻게 다루느냐?(조작)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듯 싶다. 눈에 보이는 계측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사실도 공존하고 있음을 인지하면 될듯 싶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인장이 논문 작성시 유적에서 출토된 무구류의 수치를 입력하고, 이를 백분율로 구분한 뒤 유물의 출토 위치 혹은 출토 맥락을 수치화했다고 하자. 이를 통해 당시 그 유적에서 전투 행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살펴본다고 가정했을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썩어서 없어져버리는 재질의 무구류의 존재>에 대한 계측은 불가능하다는 변수를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즉, 석기 혹은 금속기로 만들어진 무구류만 갖고 살펴보면 그 결과 자체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통계학을 적용할때 그게 합리적인 적용방법인지 자체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그럼 하나만 더 얘기해보자. 특정 유적에서 나온 토기 수백점의 높이와 구경, 저경 등의 수치를 입력해서 이를 교차분석한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 결과 모든 토기는 높이 10~30㎝ 내외, 구경은 5~15㎝ 내외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하자. 그럼 여기에서 연구자가 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 토기를 높이를 기준으로 몇개의 집단으로 분류할지? 아니면 구경을 기준으로 분류할지? 그것도 아니면 토기의 용량을 기준으로 분류할지? 이 모든 것들이 상관성이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며, 집단으로 구분할때 히스토그램을 기준으로 2개의 집단으로 나눌지, 아니면 3개의 집단으로 나눌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2개로 나눌지, 3개로 나눌지,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이며, 본인의 주장에 가장 부합되는 식으로 <조작>되어야만 한다. 같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주장하는 바가 다를수록 당연히 그 결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즉, 통계학을 적용한 뒤에 어떤 기준으로 자료를 조작해 나의 주장에 가장 적합한 결과를 얻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학은 수학이면서도,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 결과가 사실이언정 진실이라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연구방법론이라는 점은 분명하며, 직관에 주로 의존하는 유물의 형식분류보다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방법이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인 셈인데, 암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고고학이라는 것이 그냥 무식한(땅 파고 땀 내고 노가다에 술 퍼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학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고 싶어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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