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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 및 기타학문 리뷰


오랜만에 쓰는 서평. 경주로 내려와서 처음 쓰는 것 같다.

박물관 도서실에 신청해서 책은 진즉에 읽었는데 이제사 되새김해본다.

이 책은 작년에 한창 시끌시끌했던 이덕일(류)의 사이비역사학과 그에 맞선 젊은 사학자들의 공방전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이 기획되서 완성되기까지의 주변 상황은 책 서두에 잘 소개되어 있으니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등 몇번 언론에 등장한 연구자들도 있고, 그외 신진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책 속의 내용 중 상당수는 언론에도 여러번 소개됐고, 학술지에도 소개된 것들이 있어서 새로운 부분이 많지는 않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다음까페/네이버블로그 등)에서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논의되었던 부분들이기에 큰 틀에서는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유사역사학이라고 불리던 게 사이버역사학으로 불리게 됐다든가, '환빠'라는 용어를 양산해낸 환단고기와 관련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논의들이라든가)

일단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들을 살펴보자.

기경량의「사이비역사학과 역사파시즘」에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정의라든가, 사이비역사학을 둘러싼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잘 소개하고 있어서 책 첫머리를 장식하기에 적절했다. 강진원의「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장미애의「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또한 현재 한국사가 처한 현실이 어떠한가를 개괄하고 있어서 이 책이 향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첫 관문을 잘 장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에 있는 3개의 장은 어려운 내용보다는, 앞으로 무슨 내용들이 나올지 판을 깔아놓는 부분인지라 가볍게 운을 떼고 있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세부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정빈과 위가야, 안정준은 '한사군(낙랑군)'에 대해서, 신가영은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기경량과 이승호는 '단군', 권순홍은 '신채호'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1부에 비해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고, 내용 자체도 더 진지한 것들인데, 2부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이 속한 모임 '젊은역사학자모임' 구성원들이 좌담에서 토론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하면서 향후 모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들과 학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역사학계와 한국 사회와의 관계,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가야만 하는 다짐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이 책에 대한 나름의 총평을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골까지는 아니라도 왠만큼 고대사, 사이비역사학(옛날에는 유사역사학), 환단고기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마추어들이나 떠들 법한 얘기들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이렇게 학술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논문이나 저작 형태로는 얼마 안 된 최근의 성과물 같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전해졌던 주장, 근거, 의견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과거에는 아마추어나 역사동호인들이 떠들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전자는 세련되고, 후자는 거친 형태로 접했다는 차이는 분명 있다) 이렇게 될줄 그때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안일함 속에서 이덕일과 같은 이가 시대 흐름을 잘 타고 헛소리를 전파하고 있으니 그 또한 재밌는 일이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내용은 진부하다. 그렇기에 재탕의 느낌이 강하고(이미 한번 학회지에도 실린 내용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별다른 편집없이 그대로 실렸기에 <신선>하다는 느낌이 적다. 이 책의 저자가 <젊은>역사학자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닥 새로울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둘째, 첫번째 평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이 책의 정확한 타겟, 즉 독자층으로 누굴 염두에 뒀는지가 불분명하다. 저자(들)은 책의 전반에 걸쳐 대중성과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계가 더 이상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방법 혹은 시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사이비역사학이라고 상대편을 규정하고 선을 긋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젊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인 입장과 중도적인 입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아! 그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주 독자층은 누구라고 봐야 할까? 아마추어 대중들? 젊거나 혹은 어느 정도 중진급 연구자들? 식민사학자라고 종종 매도받는 원로 학자들? 이덕일과 같은 부류를 추종하는 사람들? 아니면 전혀 역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 역사와 대중을 결부시키기 위해 저자(들)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시각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냈다는 말인가? 저쪽(사이비역사학쪽)을 꾸짖고 그쪽이 잘못됐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니면 이쪽(그 반대쪽)이 옳으니 저쪽으로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런 목적성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셋째, 이 책이 전공자들 혹은 연구자들, 아니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동호인들에게 그닥 새로울게 없다는 얘기는 첫번째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두번째에서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저쪽에 쏠린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이쪽의 주장이 옳음을 설득'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혹시 그 밖에 노리던 것이 있음에도 필자가 짚어내지 못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우둔함 탓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2부의 내용이 약했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1부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가볍게 언급한 것은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살려 2부에서 뭔가 임팩트있게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는데, 그런게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경량의「'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처럼 작은 주제를 갖고 심도깊게 반박한 부분은 좋았다. 이는 해당 주제나 논란에 대해서 잘 몰라도 이 글을 읽음으로써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못 알려졌고, 어떻게 관련 주제를 이해하면 좋은지 알 수 있게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광범위한 주제를 십몇쪽에 담아내려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 이 책의 리뷰를 검색해보면 윤내현 선생님, 이덕일은 자세하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것 없이 간단하게 반박하려 한다는 비판도 보인다)

이상 3가지 정도가 이 책을 읽고 난 필자의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이덕일과 같은 부류가 판을 치고 다닐 동안 학계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한 첫걸음의 결과물이기에 그 결과가 100% 다 옳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학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꾸준히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올바른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한중일 삼국의 역사, 정치, 문화,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다. 그 이상으로 현재와 직결되는 부분인만큼 끊임없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고 잘못은 바로잡고 잘한 일은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시도가 담긴 책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조선이 가지 않은 길 역사 및 기타학문 리뷰


변화의 순간은 우리 곁에 수도 없이 닥쳐온다. 다만 열려 있고 깨어있는 자각이 없으면, 뒤늦게 지나가버리고만 기회의 순간을 통탄하게 될 뿐이다. 이런 변화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치지 않으려면, 성공했던 역사만큼이나 아쉬웠던 역사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본문 45)

역사(History)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이기도 하며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역동적인 옛날 이야기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달려들어 연구해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학문일 것이다하지만 무엇이 됐든 간에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있는 과정이며한편으로는 중요하다이 책 또한 그런 시각에서 쓰인 책이라 할 수 있다조선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전공자든 비전공자든관심이 있든 없든...조선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매우 진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조선사 전공자가 아니다저자는 고구려 전공자로 그간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던 김용만으로그의 폭넓은 시각으로 쓰인 조선사 관련 서적이라 읽기 전부터 내심 기대가 됐다저자는 서문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걸고조선이 걸었던 길을 가감 없이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그리고 단순히 만약~조선이 그랬다면이라는 if 식의 흥미위주 접근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고현재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책은 크게 4개의 주제로 구분된다. <활짝 피지 못한 조선문명의 기대주들>, <기득권을 위해 변용된 유교의 폐해>,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생활모순>, <잃어버린 자주·자립·자강의 꿈개인적으로 조선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지금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조선사에서 항상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있었는데이 책에서 언급된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묘하게 근현대 한국사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고질병같은 부분이라 더 정감(?)이 간다고나 할까암튼 몇몇 내용들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한가지만 얘기하자면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이 유교가 제자백가 시절의 (원시유교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송대 이후 공고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주희에 의해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간우리에게 성리학으로 익숙한 그 유교를 말한다중국은 높고크며조선은 그보다 낮고 작다종법적 질서에 따라 중국은 천자가 있는 천하의 중심이며조선은 그 천하관에 속한 말 잘 듣는 제후국이어야(Must do it!) 했다더 나아가 유교가 말하는 교리 중에서 사대부(양반)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취사선택하는 바람에 이현령 비현령’ 식의 정책이 판을 쳤고편협하고 획일적인 사회로 방향을 강요하는데 유교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지도를 만들었던 조선이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세계 지리에 대한 관심은 쇠퇴했고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갔다화약과 함포 또한 마찬가지다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화약과 함포라고 했을 때 누구나 이순신과 거북선을 떠올릴 것이다(조금 더 공부한 사람은 최무선까지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 또는 해양세력이 조선사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사라졌다김지남이 청나라에서 극비로 배워온 염초제조법도 조선에서는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고함선이나 화포의 개발에 무감각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은분리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조선 초기 명나라는 금과 은을 꾸준히 조공으로 받아갔고조선에서는 금과 은의 생산량을 늘리는 길 대신 광업을 억제하고 금은 사치 풍조를 비난하는 길을 택한다연산군 시절 개발된 연은분리법은 조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으로 건너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주의가 지배층에게는 적용되지 않고일반 백성에게만 강조되는 바람에 잘못된 정책이 입안되고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로 넘어갔다유교가 사회에 잘못 적용된 경우는 건축물에도 적용되었다유교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종법적 질서로 인해 조선은 스스로를 명보다 작다고 여겼고거대 건축물을 조성하지 않았다오죽하면 광개토태왕비를 발견하고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금나라 황제의 것으로 여겼겠는가패배주의에 젖어들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잠재력을 잃어버린 결과인 셈이다.

이제 저자가 왜 첫 번째 주제의 말미에 온돌을 넣었는지 이해가 좀 됐다(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세계 최고의 지도를 만들고뛰어난 화약과 함선을 만들고연은분리법도 개발했던 조선이었지만 그게 뭐?? 그래서?? 온돌도 마찬가지다우리는 온돌하면 대표적인 전통건축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지만저자는 연료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무제한에 가까울만큼 나무를 소비하는 온돌은 오히려 해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리고 저자는 온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소개하고 알려야만 비로소 온돌에 대해 올바른 시각이 정립된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했지만번번히 좌절을 겪었던 사례도 소개하고 있었다순간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신토불이가 한창 유행했던 때가 떠올랐다.

시작부터 저자는 조선의 민낯을 드러내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었다팔만대장경이나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술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도 않았다(마치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조선이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하지만못 한 것은 못 했다고도 분명히 말하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문제점은 계속 지적됐다두 번째 주제에서는 과거시험과 족보사대봉사덕치사상조선의 학구열 등이 다뤄지고 있었다학식을 갖춘 훌륭한 인재를 뽑겠다는 과거시험은 어느 샌가 신분 획득의 자격증 시험으로 변모했고당연히 인재의 수준도 떨어지게 되었다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과거시험 말고 다른 활로를 열어주었더라면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더 이상 과거시험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선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편협된 길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버리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저자는 2016년 짐 로저스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하도록 시행되는 제도의 문제점을 재삼 지적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과 함께 족보는 사대부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로 변모하였다모계 대신 부계가 강조되고외가 대신 친가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이 중시되었으며이는 자연스레 조선 후기 왜 갑자기 양반이 늘어났는지를 알게 해준다현대 한국인의 조상 중에는 명재상이나 청백리도 있었지만범죄자매국노기생외국인노비 등도 있었을 것이라고 과감히(?) 얘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속이 시원해졌다고나 할까어느 누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족보를 지나면서 저자는 좀 더 과감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저자는 사대봉사가 忠孝에 의거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세습 봉작을 받아 귀족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고자 했던 사대부들의 욕심 때문에 생겨났다고 콕 짚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가문 내에 관리로 임명되는 사람이 있으면가문 내에 누군가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팔아 온 가문이 덕을 보는 이상한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고사대부들은 더더욱 쓸떼없는 사대봉사즉 제사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우리는 불과 몇 백 년 전 사대부들의 과욕으로 생겨난 제사를 마치 오랜 전통인양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고 있는 셈이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재밌는 점은 조상들에 대한 의미 없는 제사에 집착했던 당시 양반들이 유교의 덕치사상에 경도되어 탁상공론만 일삼았다는 점이다덕치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나라가 보존되고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 전개가 자연스레 통용되던 시대가 바로 조선이었다중세 유럽을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면중세 이후 조선은 유교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한편두 번째 주제 말미에서 저자는 조선의 백성들이 갖고 있던 엄청난 학구열을 소개하고 있다과거시험이 성공의 유일한 길로 인식되면서 어찌 보면 島嶼 지역의 백성들조차 엄청난 학구열을 지녔다는 것은 긍정적인 낙수효과로도 볼 수 있다하지만 역시 그뿐이다백성들이 공부해서 기득권층으로 발돋움하는 길은 거의 없었다부와 신분의 세습이 지속되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고되풀이되는 사회구조는 보다 공고해졌다오늘날 대학에 나오고 석박사를 취득해도 놀고 있는 고학력자가 많은 것을 보면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이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축제와 사라진 제천행사모피의 사치가 불러온 우울한 결과황칠나무가 사라진 이유노비제도와 과부재가금지법 등이 언급되고 있다여기서도 문제는 유교였다유교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서고려시대 때 지내오던 팔관회그 이전부터 지내던 각종 제천행사와 각종 마을축제는 사라지고 말았다축제는 사라지고 설날한식단오추석 때 성묘하는 유교적 제사의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축제와 제천행사가 사라지면서 상하가 분리되었다오늘날 모 정치인이 국민들을 개돼지로 인식했던 것처럼 조선시대 양반들도 그러했던 것이다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고조선은 무조건 중국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두 동강냈다이런 것들이 오늘날 新 계급주의의 근원은 아닐까?

조선 지배층이 과시할 때 경쟁적으로 소비했던 모피 값으로 흘러갔던 대부분의 재물이 만주족의 興起에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고조선 때만 해도 모피 생산-유통의 중심지였고그 이후 고구려나 발해 또한 모피 생산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순간 생산자와 소비자가 뒤바뀌게 된 셈이다단순히 사치를 일삼았다는 것을 벗어나 망국의 지름길을 걸었던 셈이다그와 더불어 황칠나무 또한 이익을 주는 특작물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대상이 되어버리자 백성들은 황칠나무를 찍어 넘겼고황칠나무 생산은 그 전통이 끊기고 만다하지만 홍삼은 돈이 되기에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단순한 이치가 아닌가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단순한 이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시한번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사상 최고의 聖君으로 꼽는 세종 때문에 조선의 노비 제도가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병자호란 이후 제대로 가정과 나라를 지키지 못한 찌질한 남자들이 오히려 피해자이자 동족인 여자들을 인격 살해했다고 말이다그러면서 저자는 위안부 박물관의 부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옆 독립공원이 지정되자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이 이를 반대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탄한다독립운동가만 고귀하고 위대하며어쩔 수 없이 끌려가 한세대를 치욕과 어려움 속에서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불결하며 수치스럽고 부끄럽단 말인가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뿌리 깊은 유교주의적 시각이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주제에서 저자는 양성지문순득을 비롯해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의 사례 등을 통해 조선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었다양성지는 개인적으로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선의 정치가다물론『책에 미친 바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재는 많았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양성지만큼 정책의 중심부에 가까웠던 이는 없었으며그런 만큼 더 안타까운 이도 없었다문순득처럼 원치 않게 세계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조선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조선에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인재를 받아들일 여유와 시스템이 없었을 뿐이었다그런 나라가 500년이나 지속되면서 남긴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너무나도 깊게 뿌리박혀 있다.

책의 마지막으로 저자는 환구단과 사대주의선조를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최근의 대한민국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들지 않는가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아니 정치인들 중에서 과연 대한민국이 얼마나 자주·자립·자강을 잘 실현하고 있다고 느낄까아니그러지 못한다고 미리 답을 정해놓고 친미는 종북이니친중이니 떠들어대지 않을까꼭 선조처럼 分朝를 만들고 중국에 빌붙어 내 백성내 강토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다스스로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사리사욕에 젖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것 또한 선조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 것이다.

저자는 회전목마를 타듯이 강약을 조절하며 조선을 비판하면서칭찬하면서 어르고 달랬다개인적으로 조선사를 싫어하는 필자가 책을 썼다면 시종일관 강하게 비판만 했을 것이다그걸 참아내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하지만 저자는 그 와중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강하게 얘기할 때는 얘기하고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해 분투했다물론 잘못 이해된 유교가 전체 사회를 지배했던 조선에서 칭찬받을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관심거리 이외에 더 발전적인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중국화하는 일본: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을 보면 그 책의 저자는 오히려 조선이야말로 중국화(선진화)가 일찍 된 나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물론 필자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조선이야말로 小中華에 가장 걸맞는 국가가 아니었을까그러면서도 선진화라고 말하는 중국화의 긍정적인 요소는 오히려 배제하고나쁜 것만 배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씁쓸했다.

이 책을 읽고 곰곰이 되새겨보니 현재 대한민국에는 조선의 잔상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저자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조선이 잘못한 것을 한시라도 빨리 인지하고 제대로 바라보자그리고 잘한 것만 기억하지 말고 잘못했던 것을 되풀이하지 말자!! 과거의 성공 요인이 현재에 반드시 성공 요인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하지만 과거의 실패 원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미래에도 실패 요인이 되는 법이다그러면 우리는 조선이 걸었던 길특히 망국과 식민지배한국전쟁과 분단국가의 길은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지난 주말 색시와 함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방문해 여기저기 유교의 위대함(?)과 전통이 이어지게 된 자랑스러움(?)을 한껏 느끼고 나니 더 많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다우리는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잘잘못을 분별하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지침으로 삼곤 하는데이 책 또한 우리에게 그런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안학궁의 축조시기는? 고구려사

현재 평양에 소재하는 안학궁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고구려 전기의 평양성, 그리고 고구려 말기의 별궁, 마지막으로 고려시대의 별도 등이 그것인데, 사실 저는 안학궁에 대한 연대 논란이 있다는 것을 대학교 3학년, 그러니깐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났을 때죠. 모 학회에서 주관하던 학술대회에 갔을때 일본인 학자(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가 그렇게 주장을 하자(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 학자는 그때 새로운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있었던 주장을 정리해 발표했던 것 같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몇몇 국내 학자들이 심하게(?) 반발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안학궁은 당연히 고구려 후기 도성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그 이후 몇몇 논문들을 살펴보고, 주변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쓴 이들도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어? 이거 생각 외로 심각하게 살펴봐야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 최근에 <고구려 기와>를 중심으로 안학궁 축조시기를 살펴본 논문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왕궁과 같이 기와가 다량으로 쓰이는 건물의 경우, 기와를 통한 편년은 매우 유의미하기 때문에, 고고학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은 둘러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논자는 먼저 그동안 고구려 기와로 알려진 것들을 싹 정리해서 분류를 합니다. 그렇게 분류된 고구려 기와는 총 3,200여점이고, 이를 몇몇 기준에 따라 선별합니다. 먼저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 검토를 통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와, 고구려 기와와 기술적 속성이 일치하는 집안 및 평양지역(수도권) 출토의 기와 등으로 세분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논자는 4장에서 고구려 기와의 특징을 일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기와의 문양과 제작기법(특히 접합기법)이 주된 분류기준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수막새 접합기법>의 경우, 기존에 명문과 문양의 변화만을 편년의 판단근거로 삼은 것에 더해 하나의 기준을 더 제시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5장에서 안학궁의 고구려 기와에 대해 정리합니다. 먼저 기존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기 평양설의 근거 : 가장 기술적으로 발달한 <청회색>의 기와가 왕릉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적석총 및 도성유적에서만 사용된다. 즉, 청화색 기와가 출토되는 안학궁은 고구려의 전기 평양성이며, 태왕릉이나 장군총 조영 당시의 기와와 동시기로 판단된다.

2. 고구려 말기 별궁의 근거 : 집안지역 적석총에서 출토되는 복선연화문 수막새와 동형의 수막새가 안학궁에서 발견되지 않고,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 및 암막색와 같이 주연부에 연주문양이 표현된 것이 한반도에서 유행하는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이다.

3. 고려시대 별도의 근거 : 문양부가 있는 암막새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제작된다. 한편, 傳 만월대 출토 암막새가 안학궁 출토품과 문양 구성이 유사한데, 대동강 북쪽의 안학궁이 통일신라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지역의 와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려볼 수도 없고, 고려시대로 봐야 적절하다(부여 금강사지 출토 암막새와 비교해 이를 고려로 봤다고 하는데, 정작 금강사지 출토품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생략됐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이에 논자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와 고구려 기와의 일반적인 특징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합니다(고려시대 기와와의 비교가 이뤄지면 보다 정확한 안학궁 축조시기가 밝혀질텐데, 그건 추후 논고로 하겠다고도 하고요). 앞서 언급했듯이 논자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부분은 안학궁 출토 수막새의 문양적 특징과 제작기법상의 특징 2가지입니다. 

1. 문양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는 시문된 문양에 의해 주문인 연화문과 변간에 연꽃 변형문이 확인되는 <복합연화문 수막새>, 주문인 연화문양만 와당면에 배치된 <연화문 수막새> 이 2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복합연화문 수막새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고구려 복합연화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 연화문 수막새의 경우는 고구려의 것과 유사한 것도 있지만, 역시 다른 것도 있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2. 제작기법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수막새는 주로 3가지의 긁기에 의한 제작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논문의 중반에 언급되는데,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수키와를 와당부의 뒷면에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지 않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긁어내는 기법 1(복선연화문, 복합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뒷면을 일정한 폭을 가지는 도구를 이용해서 긁어내는 기법 2(복선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는 빗상의 도구, 즉 다치구를 이용해 뒷면을 긁어내는 기법 3(권운문 수막새를 제외한 모든 수막새에서 확인) 이렇게 3가지 기법이 확인된다고 한다. 하지만 안학궁에서 확인된 수막새는 모두 와당부 뒷면에 동심원상의 병행하는 두 줄의 홈이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분명히 고구려의 일반적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앞서 문양만 놓고 봤을때 고구려 것과 비슷하다고 분류했던 것조차도 제작기법만 놓고 보면 분명히 고구려 것이 아니게 된다고 한다.

물론 논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의 편년을 얘기한 것이므로 이것이 안학궁 축조시기와 100% 직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와는 처음 얹은 뒤 지속적으로 개보축을 하면서 수리해서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게 정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학궁에서 출토된 다수의 수막새의 제작시기가 고구려 멸망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분들도 한번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

해당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홍규, 2014,「고구려 기와의 분류와 특징에 관한 일고찰」『선사와 고대』41, 한국고대학회.

(파일 용량이 크다고 업로드가 안 되네요. 이런건 다음이나 네이버보다 확실히 이글루스가 불편한듯 합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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