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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이묘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2010년) 고고학

지난번 전국고고학대회 2일차 후기를 쓰면서 정인성 선생님의 張撫夷墓 관련 발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은 그 장무이묘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정인성, 2010,「대방태수 張撫夷墓의 재검토」『韓國上古史學報』69, 韓國上古史學會.

먼저 장무이묘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필요하신 분은 검색해보라. 바로 나온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장무이묘가 '황해도=대방군(혹은 대방 지역)'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고고학적 근거로 오랫동안 한국 학계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뭐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주로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포함)와의 대결은 물론이고(이에 대해서는 네이버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은?' 블로그의 장무이묘 관련 글들을 참고하면 재미있게 잘 풀어써놨다), 같은 강단사학계 내에서도 견해가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연대나 피장자 등에 대한 부분).

그런데 그 다른 견해의 근거가 되는 것들이 바로 고분에서 출토된 '명문이 적힌 전돌'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그 명문이 적힌 전돌, 그 자체에 주목하고 곧 분석하기 시작했다. 먼저 전돌에 대한 정보가 각 학자들마다 달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과연 장무이묘에서 출토된 전돌은 정확히 어떤 것들이 있고, 몇 점이 있는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朝鮮古蹟圖譜Ⅰ』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총정리하여 장무이묘 출토 전돌이 총 10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그 중에는 문자없는 문양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기존에 이걸 지적한 연구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그동안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해당 유구의 출토 유물도 정확하게 몇점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 한채 수십년동안 어설픈 자구 해석에만 집착했던 것이었다. 필자 또한 장무이묘에 대해서 기존에 나와 있는 해석과 정보만을 갖고 나름의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주객이 전도된 행동이었는지 이 논문을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장무이묘 출토 전돌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소견을 밝히고 있다. 이는 저자가 동경대학 유학 시절, 동경대학 건축학 공학부 연구실에 쳐박혀 있던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발굴팀의 수습유물들을 직접 실견하고 계측하고 분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그처럼 정리한 자료는『일본에 있는 낙랑 유물』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저자는 장무이묘 출토 전돌을 살펴보고, 성형법이 일견 전형적인 낙랑 · 대방군 것과 유사하지만 승문 타날흔의 아래에 강한 긁어내기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전형적인 낙랑 고분에서 출토되는 전돌에는 승문 타날흔의 아래에서 강한 긁어내기 흔이 관찰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낙랑토성에서 출토되어 동경대학에 보관된 전돌을 모두 관찰한 결과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적갈색 색조를 띠는 것이 포함되었다거나, 표면에 석회가 대량으로 묻어 있는 점, 문양을 나타내는 선이 가늘고 옅다는 점도 낙랑 · 대방의 일반적인 전돌과는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한편, 장무이묘의 축조에 사용된 전돌에 左書가 많은 것은 이를 제작한 공인이  전돌을 거푸집으로 찍어내면 거푸집의 측면에 새겨진 문자가 反轉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였거나, 혹은 그것이 무시되거나 허용되는 조건에서의 조업이 이루어진 정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 곳에서 출토된 개별 문자전을 제작한 거푸집이 하나가 아니라 복수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고 한다.

상기 언급한 내용과 더불어 문자전의 태토와 색조, 그리고 소성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통해 저자는 장무이전의 축조에 사용된 벽돌이 동일한 공인이 일괄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공인 집단, 혹은 복수의 개인이 개별적으로 제작에 관여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장례 담당자인 主簿 趙씨가 무덤 축조를 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에 쫓긴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수의 제작 주체가 만든 전돌을 일일히 모아 만들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나 싶기도 하다. 뭐 어쨌든 당시의 고분 제작 주체나 그와 관련된 네트워크 등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렇게 저자는 장무이묘 출토 '명문이 있는 전돌의 수량과 내용', 장무이묘 출토 '전돌 분석' 등을 시도하고, 마지막으로 장무이묘의 구조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었다. 세키노 타다시는 그동안 파왔던 낙랑고분을 떠올리며, 장무이묘 역시 전실묘이므로 궁륭천장이었을 것으로 보았으며, 그의 복원안은 이후 수십년간 한국 학계에도 여과없이 받아들여졌다(가장 최근의 일본 학계 내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결코 줄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고고자료 자체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당시 일본 관학파에 의해 실시된 낙랑 고분 조사 당시 바닥면까지 들어내면서 조사한 사례가 없다는 점(장무이묘 연도부 한켠에서 거대한 판석 1장이 발견되었는데, 기존에는 이를 두고 바닥에 있던 판석을 들어올려 비스듬하게 기대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대형 판석은 대게 바닥에 까는 것이 아니라 천장을 받치는데 사용된다는 점(전실묘에서 판석을 바닥에 깐 사례는 없다), 판석 한쪽면에 두껍게 석회가 발라져 있는 점(저자는 평양에서 직접 관찰한 고구려 고분들을 보면 천장석 아래면에 두껍게 석회가 발라져 있었다고 적고 있다) 등을 통해 장무이묘가 궁륭상 천장을 가진 것이 아니라 石蓋가 있는 고구려식 고분이라는 해석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고구려 고분 중에는 전돌로 현실을 구축하고 지붕에 석개를 하는 사례가 여럿 있는데 佟利墓, 승리동 3호, 로암리 고분, 봉도리 송오 고분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에도 전돌과 석재가 혼용된 것이 있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 논문을 보면서 필자 또한 새롭게 알았다(심지어 우산하 3319묘는 전돌로 현실을 만들고, 외부는 적석총 형태로 무덤을 완성했는데, 정말 독특하고 신기했다).

이상의 여러 근거들을 통해 저자는 장무이묘가 궁륭상으로서 축조 연대가 353년으로 알려져 있는 석개천장의 동리묘보다 시기가 올라가야 한다는 기존 견해는 수정의 여지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무이묘를 구성하는 많은 속성에서 고구려적인 요소가 있음을 밝히고 그것을 근거로 장무이묘가 4세기 중엽 이후의 고구려 고분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위에 언급한 전돌로 현실을 구축하고 석개한 여러 고분들은 실제 대방군이 사라진 4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들이라고 한다). 즉, 이처럼 장무이묘가 시기도 4세기 중엽으로 떨어지고, 그 성격도 대방군과 관련된 인물의 고분이 아닌 고구려 고분이라고 한다면 대방군의 위치를 황해도로 보고, 그 치소를 장무이묘에서 가까운 지탑리 토성으로 판단했던 지금까지의 견해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이제는 신천리에서 발견된 토성과 안악지역에서 확인되는 전실묘, 은율군에서 발견된 수십기의 전실묘 등을 토대로 대방군치의 위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생긴 셈이다.

이 논문의 저자인 정인성 선생님은 최근 낙랑군과 한사군, 일제강점기 식민지고고학에 대한 일련의 연구성과들을 내놓으며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식민지고고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너무 겉모습만 단편적으로 판단했다~는 인식 하에 당시의 조사성과를 철저하게 재검토하고, 그 의의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식민지고고학에 대한 저자의 논고는 필자의 다음 글을 참고하면 좋을 듯 싶다). 이 논문 역시 그러한 인식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학자들이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키노 타다시의 조사 성과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기존의 견해를 수정하고, 장무이묘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특히, 해당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직접 보고 관찰한 후에 나온 연구 성과이기 때문에 선행 연구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자료들을 발굴해서 새로운 견해들을 내놓을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한사군, 낙랑군과 대방군과 같은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들이 제대로 처리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p.s) 아래 논문 원본 첨부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Jangmui.pdf

핑백

  • Warfare Archaeology : SBS 스페셜 239회 방송 관람 후기 (2) 2011-07-12 14:16:13 #

    ... 이어지는 내용이니깐 참고하시길.그럼 이제 2번째 내용부터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대방태수 장무이묘이건 필자가 이미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정인성 선생님의 논문의 내용(클릭)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단, 선생님은 논문 말미에서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방군의 위치를 지금의 황해도로 보고, 그 치소를 장무이묘에서 가까운 ... more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01:57 # 답글

    소하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장무이묘의 사진은 제가『조선고적도보Ⅰ』의 사진을 스캔하는 것보다 이 논문에 실린 것을 그대로 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절대로 귀찮아서 그런건 아님. 절대로...^^;). 그래서 여기다가 관련 논문을 첨부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번동아제 2010/11/16 09:57 # 답글

    지난 9월에 나온 한국고고학회의 개설서인 "한국 고고학 강의"에도 위에 소개한 입장 위주로 설명하고 있었던듯...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11:01 #

    네~한국고고학강의 초판에서는 딱히 그런 내용을 싣지 않으셨지만, 개정판에서는 그런 내용을 넣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개정판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초판에 비해 내용이나 도면, 도판 등이 많이 첨부되어 잘 다듬어진 것 같더라고요.
  • 2010/11/16 14: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20:00 #

    음. 그에 대한 고고학적인 근거나 자료는 저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서...Shaw님께 뭐라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사실 한사군에 대해 고고학적으로 접근해서 공부해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안악이나 신천 일대도 모두 지탑리 토성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은 사실인만큼 그 곳에서 나온 유물들 혹은 기존의 연구성과들도 이제는 장무이묘처럼 재검토 혹은 더 정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대방군을 한강 유역으로 보는 종래 견해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 소하 2010/11/16 16:56 # 답글

    감사합니다 ^^ 잘 보겠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20:01 #

    아닙니다. 장무이묘 사진을 스캔해서 올려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 요새 일이 좀 많아서~
  • 지나가던 2010/11/16 17:01 # 삭제 답글

    정인성하고 똑같은 소릴 하는 사람을 나도 본 적이 있지.

    '가을'과 '치우의 후예'.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20:03 #

    음. 이게 최근의 논문인데...그런 분이 또 계셨군요.

    그나저나 '가을'님과 '치우의 후예'님도 여기 블로그가 있으신가요?

    흠.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링크 주소라도 좀 알려주시면 좋았을껄...쩝.
  • fff 2010/11/16 18:56 # 삭제 답글

    식민빠들이 아직도 잡혀온 짱개 포로 대방 태수 장묘이가지고 대방군 증거다라고 개소리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합니다.
    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처치해야할지?
  • Warfare Archaeology 2010/11/16 20:02 #

    음. 제가 올린 논문은 장무이묘를 고구려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 대방군의 증거라고 보는 견해는 아닙니다.

    또한, 식민빠건 뭐 어쩌건...기존 연구자들이 장무이묘 자체를 고고자료로서 정밀하게 재검토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환빠든, 식민빠든 양자 모두 그간 신경쓰지 못 한 부분이므로 이에 대해서 fff님이 너무 열받아하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살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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