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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의 왕성 여부 (1) - 1 고고학

고고학이냐 문헌사학이냐의 차이일까? by 블레이드님

블레이드님과의 첫번째 글에 대한 첫번째 트랙백이다.

이에 대해 간단하게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블레이드님의 글을 임의로 간략하게 요약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할텐데, 그 과정에서 본인이 잘못 요약하거나,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 부탁드린다.

1. W.A님(요약해서 적겠다)이 스스로 말했듯이 왕궁이 있어야 왕성이다. 즉, 왕궁이 나오지 않거나 나올 가능성이 없으면 왕성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깐 왕궁이 왕성밖에 있을 수도 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본인이 얘기한 요지는 이와 좀 다르다. 다시 한번 본인의 글을 봤지만, 본인은 반드시 왕궁이 있어야 왕성이다...라고만 끝맺지 않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뿐만 아니라 공산성에서도 뚜렷한 왕궁은 확인되지 않았다. 사비도성이라고 마찬가지겠는가. 그럼에도 왜 이 곳들을 왕성이라고 하는가. 고고학계에서 공인할 수 있는 '고대 국가의 도성으로서 갖춰야 할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인원이 강제 동원되어야 하는 거대한 판축성벽, 제례공간, 대규모 저장공이나 수혈유구와 같은 중앙에서 통제하는 대량의 자원, 환호나 목책과 같은 방어시설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즉, 왕성의 직접적인 근거인 왕궁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근거들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소리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공주나 부여에 사는 사람들은 왜 풍납토성 주민들처럼 공산성이나 사비도성에서 왕궁이 나오지 않느냐고 난리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미 풍납토성은 순수 학문적인 영역을 넘어선 녀석이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왕궁이 나오지 않아도 왕성이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만약에 다른 곳에서 왕성이 떡 하니 나왔는데도 그런 얘기를 하는 고고학자가 있다면 그 양반이 미친 사람이지. 하지만 몽촌토성에서 바로 풍납토성으로 갈아탄(?) 전적만 보더라도 고고학자라면, 눈 앞에 뻔히 보이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이상, 과거의 학설을 절대로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문헌사학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흔히들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삼국시대때 문헌인『신집』이나『유기』등이 나오면『삼국사기』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그 콧대높고 완고한 원로 사학자들이 그 새로 발굴된 문헌을 쉽사리 인정해줄까?『화랑세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고고학은 다르다. 원로 고고학자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땅 속에서 새롭게 속출하는 신자료들을 무슨 수로 막겠느냐 이 말이다. 즉, 왕궁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확신하지 못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셈이다.

또한,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전제가 현재 일반적인 상황이기에 성 내에서 왕궁을 찾는 것이지...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풍납토성이 경주 주변의 명활산성과 같은 역할을 했던 녀석이라면 그 안에서 굳이 왕궁을 찾아야 할까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뭔가 획기적인 신자료가 나온다면 풍납토성의 접근방향은 분명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달라져야겠지.


2. 왕궁을 확인하고 나서 왕성이라고 발표하는게 당연했다. 왕궁을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왕성이라고 한 것은 고고학 분야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논리인 것 같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왕궁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도성의 자격 요건으로 볼만한 근거들이 나와서 그렇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발굴 담당자와 교수님이 성급했던 감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학문의 영역을 넘어선 범위라 어느 정도 언론의 힘에 기댄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뭐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걸 두고 고고학 분야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은 조금 오바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되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기사가 솔직히 그렇게 사회적인 이슈로 작용하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탈도 많고 말도 많던 세종시 행복도시에서도 발굴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보상 문제가 잘 마무리되자 아무리 대단한 유적들이 나온다 한들, 이런 문제들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니깐. 막말로 풍납토성 주변의 주민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간다면...그래도 이러한 사회적 관심이 지속될까? 암튼, 이건 논외의 문제이니 여기서는 그만하겠다.

또한, 분명한 것은 발굴 담당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이 학계의 중론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모든 고고학자들이 100% 그 견해를 수용하는 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 본인만 하더라도 풍납토성에 대한 접근방법이 그들과 다르다. 본인은 풍납토성이 왕성이다~라는 전제조건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한성백제의 중심지를 고려했을때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위치가 어디냐~라는 식으로 접근을 해 본다. 그렇게 봤을때 고고학 전공자인 필자가 발굴이 이뤄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이성산성 등을 고려하지 어디를 고려하겠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유물-유구의 가치를 추산했을때 풍납토성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 뿐이다.

더 나아가 풍납토성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그건 그 유적의 발굴 담당자들의 잘못이지 그것이 한국 고고학계 전체의 잘못은 아니다. 해당 유적에 대해 그 유적의 발굴 책임자와 지도위원들이 책임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본인처럼 거기 발굴장에서 단 하루도 일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싸잡아 한국 고고학계의 잘못이라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학자로서의 양심과 학문적 소양은 같은 고고학자도 얼마든지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를 블레이드님이 한국 고대사학계를 바라보는 것처럼 거대한 서울대 학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한국 고고학계에서 서울대 학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지 않으니 말이다.


3. 아무데나 적당한 유물이나 유적만 발견되었다고 왕성으로 몰아갈 수도 있게 된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성향도 있다.

이건 잘못된 인식이다. 정말 큰일날 소리...

발굴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알면 이런 얘기는 함부로 나오지 않는다. 아무데나? 적당한? 땅을 파기 전에 이미 사전조사가 이뤄지고, 땅을 파면서 혹은 땅을 다 판 다음에는 각종 방법론을 적용해서(단언컨대 문헌사학자들은 평소 절대 시도해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방법론을 고고학자들은 사용한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문헌사학자들은 고고학자들에게 절대로 우위에 설 수 없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그 결과물을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데나 파지도 않을 뿐 더러(그 많은 돈을 누가 감당할텐가?), 그 안에서 나오는 유물과 유적을 적당히 포장해 해석하지도 않는다(그럼 돈 대주는 사업시행자들이 당장 가만 있겠는가?).

그리고 풍납토성만큼 왕성으로 비정되는 곳임에도 발굴조사가 이만큼 이뤄진 곳이 또 있나 싶다. 이성산성? 솔직히 백제 문화보다 신라 것이 더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하남 고골단지? 고려시대 문화층이 잔뜩 나왔다. 물론 백제 것도 있지만. 어제 소개한 블레이드님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절터의 초석이라든가, 주변에서 소규모로 실시된 발굴에서 확인된 양상은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정밀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아! 쉽게 생각해보자! 풍납토성 이외에 하남시 고골단지나 이성산성에서 풍납토성만큼의 유구와 유물이 나온다고 하자. 그럼 학계의 중론은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그때 가서야 '어? 풍납토성이랑 비등한 유적이 또 있네? 백제 왕성에 대해 재고해봐야겠네~'라는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그럼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올려면? 당연히,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유구와 유물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기존 학계의 학설을 뒤집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수억의 돈이 들어가는 발굴조사로 연구의 근간을 이루는 고고학이 그렇게 쉽게 기존 학설을 바꾸겠는가? 대신, 신자료가 나오면 그만큼 기존 학설이 빠르게 바뀌는 것이 바로 고고학이기도 하다. 급하게 마음가지면 안 된다. 고고학은...대신 신자료가 나오면 재빠르게 기존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본인의 전공은 고구려 관방시설이다. 그중에서도 한강유역 보루 전공인데, 이는 지도교수님 전공과 맞물린다. 그리고 본인과 지도교수님의 보루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다르다(주변에서는 논문 쓴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차이점

지도교수님

(을 위시한 서울대 몇몇 연구자들)

본인

보루의 위계

홍련봉 1보루가 높다. why? 연화문와당이 나왔으니까. 연화문와당은 왕궁, 관청, 사찰에만 쓴다고 하니깐 여기는 당연히 군사중심지였을 것이다.

아차산 3보루가 높다. why? 구조적으로 내부시설도 더 많고 규모도 크며 주둔 병력도 다양하니까. 연화문와당은 종교적인 건물 상부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요동성의 주몽 사당처럼 말이다. 홍련봉 1보루는 지정학적으로 최남단이어서 방어에 불리하다.

보루 주둔군의 병종

창수, 궁수 등이 존재했고 도끼와 환도는 보조무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창이 개인무기이며, 도끼와 칼, 활도 유기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일반 산성 주둔군과 달리 보루 주둔군은 특수성이 요구된다.

보루 주둔군의 편제

구당서등의 기록을 토대로 봤을 때 , 와 같은 편제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중국과 고구려가 동일하다고 볼 수없다. 오히려 유목민족의 10진법, 오호시대의 북조 국가들의 편제와 비슷할 것이다.

보루의 목적

중랑천 혹은 한강 북안에 남평양(혹은 한성) 시가지가 있었을 것이며, 보루는 국내성을 둘러싼 산성처럼 남평양(혹은 한성)을 둘러싼 방어체계를 구축했을 것이다.

보루는 기본적으로 산성과 성격이 다른 관방시설이며, 그만큼의 방어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남평양(혹은 한성) 시가지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 확인된 바 없다.

한강 유역의 지배방식

아차산 일대 보루 및 청주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 산성을 보면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6세기 중반까지 직접지배했을 가능성이 높다. why? 5~6세기 웅진기의 백제유적이 한강 유역에 전무한 것도 문제이다.

직접지배와 간접지배를 반드시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직접지배하지 않았다 하여 그곳을 백제가 직접지배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제국체제를 갖춘 고구려로서 변경에 가까운 한강 유역은 간접지배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근거가 바로 보루이다. why? 고구려가 직접지배할 때 반드시 축조하는 지방 거점성이나 소규모 방어산성 들이 거의 없다.

 

보루에 대한 신자료가 계속 새로 나오고 있다. 지도교수님이 연구했을 때와 본인이 연구했을 때는 계속 차이가 난다. 또한, 기존에 접근했던 방법론 대신에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한 본인의 연구성과를 지도교수님은 쉽사리 묵살하지 못 했다. 이러한 인식 차이로 인해서 지도교수님은 보루에서 생산 유적이 확인되기를 원하신다. 예를 들면 토기가마터와 같은 곳 말이다. 홍련봉 2보루에서 간이 소성시설로 볼 수 있는 유구가 나왔고, 토기 가마터라는 언급도 있었지만 본인은 이에 반대한다. 보루는 어디까지나 순수 군사기지이기 때문에 대부분(100%는 아니고) 후방에서 단일화된 군수보급체계에 맞춰 보급품이 운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루에서 생산 유적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본인의 생각이 맞다. 단, 본인의 생각이 틀린 신자료가 나오다면 그때에는 본인의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묻는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게 집자리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게 그 시대 토기인지 어떻게 알아요?'

고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질문 Best 3에 들어갈까나? 고고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단 일주일이라도 현장에서 땅을 파본 사람이라면 고고학 전공의 학부생이라도 위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데서 나오는 적당한 유물과 유구를 갖고 고고학자들이 허술하게 과거 당대사를 복원하지는 않는다. 제발 그런 인식은 피해주시길 바란다. 오히려 필자가 보기에 소위 역사학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문 해석 좀 한다'고 논문이나 책 쓰는 양반들도 꽤 있으니 말이다. 한문이야 배우면 해석할 수 있지만, 땅은 파는 법을 배운다 한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땅이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설령 발굴된 자료를 윗대가리들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오도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발굴자료가 나오기까지는 순수하게 학문적 입장에서, 왜곡없이 조사를 진행한다. 그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4. 왕궁은 기본적인 크기가 있다. 안에서 대형건물지, 의례용 건물 등이 나왔다고 왕성은 아니다. 그건 왕성이 아니어도 나올 수 있다.

본인도 여기에는 동의한다. 물론 반드시 국력과 도성 혹은 왕궁의 규모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대 국가에서 웅장한 건축물은 곧 위정자의 위세와 권위를 상징하며, 그 영향력은 자국 내의 국민뿐만 아니라 그 국가를 방문하는 외국 사절단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힘이 커지면, 위정자들은 웅장한 궁궐을 갖길 원했고, 그것은 당연시되어왔다. 하지만 그 궁궐이 없다 해서 그곳이 왕성이 아니다~와 직결될 수는 없다. 필자도 말했지만, 왕궁이라면 일련의 건물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런 건물군은 확인된 바가 없다.

의례용 건물과 대형건물지 등이 나왔다 해서 그곳이 왕성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럼 블레이드님과 강찬석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다른 후보지에서는 왕궁이 나왔단 말인가? 그 역시 마찬가지다. 고고학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런 얘기는 좀 심하게 얘기하면 '고고학을 모르는 역사학자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풍납토성에 왕궁이 없으니 왕성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는 왕궁이 나왔단 말인가? 그럼 한성백제의 왕성은 없다~는 것으로 현재 학계의 견해가 모여야 하는가? 그럼 분명히 천도했다고 하는 공주 지역에도 왕궁이 없는데, 그럼 백제는 사비도성 이전에는 왕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가란 말인가? 또한, 대형건물지나 의례용 건물(풍납토성과 비슷한 등급의)이 동시기 다른 유적에서도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보지는 못 했다. 위에서 썼듯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만큼 발굴조사가 이뤄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늘 말하지만...

다른 곳에서 왕궁이 나오면 그 곳이 백제 왕성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왕궁은 커녕 도성의 필요 조건으로 볼만한 것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나마 그러한 조건들이 확인된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데에 무슨 이견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5. 강찬석 선생님의 자료에 의하면 200평 정도의 풍납토성 내 대형건물지는 다른 육각형 주거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왕궁급 건물이라고 할 수없다.

개인적으로 강찬석 선생님과 블레이드님이 쓰신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른 곳에는 이렇게 나왔는데, 왜 백제는 이렇게 안 나오냐?

낸들 알겠습니까? 그럼 전 반문하고 싶습니다. 다른 곳에 그렇게 나왔다고 백제가 반드시 그렇게 나오리라는 법 있습니까? 중국 도성 체제, 고구려와 신라의 도성 체제가 그러하다고 한성 백제도 그러해야 한다? 솔직히 고구려 초기 도성이 방격 구획으로 이뤄졌는지, 신라 초기 도성이 그러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 다 후기의 자료지요. 그럼 결론적으로 백제 초기 도성의 구조도 모른다~가 정답입니다. 현 상태에서. 그런데도 강찬석 선생님은 저와 다른 곳에서 벌인 토론 및 책에서 줄기차게 얘기하시더군요. 다른 문화권, 다른 나라의 도성 체제를.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지, 직접적인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고려만 하더라도 동시대 중국과 다른 방식의 도성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삼국시대라고 반드시 같았을까요?

또한...한성백제때 왕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無에서 차근차근 자료를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한성백제때 왕궁 자료가 있고, 그거랑 비교했더니 지금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부정하겠습니까? 학자라면, 아니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책이 있는 저자라면 강찬석 선생님은 그렇게 쉽게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만만하신지 전 그게 더 궁금하더군요. 건축학자로서 건축물의 구조나 역학적 관계를 본인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초석이 놓인 왕궁터가 더 웅장하며, 구조적으로 더 발전되었다는 그 분의 말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한성백제의 왕궁이 꼭 동시대 고구려와 같아야만 했겠습니까? 다른 스타일일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 겁니까?

제가 예전에도 썼지만...

고구려에서 철제 솥과 토제 시루 등을 사용한 조리방식을 갖추고 있을 때에도 백제는 토제 장란형토기를 사용했습니다. 시루가 아니고요. 분명 이는 고구려보다 수준이 낮은 방식이지요. 그렇다고 당시 백제 사람들이 더 못 먹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먹는 음식도 달랐을테고, 재지계의 오랜 조리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겠죠. 동시기 고구려는 일찍부터 우수한 철제농기구가 확인됩니다. 전국계 철기부터 한대 철기까지 꾸준히 새로운 철기문화를 고구려는 받아들이고 개발하죠. 동시기 한반도 남부에는 그만한 철제농기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반도 남부 사람들의 농사짓는 기술이 더 수준낮고 더 못 살고, 생산성이 더 떨어진다고 봐야 할까요? 아닙니다. 아무도 그렇게 안 봅니다. 혹독한 고구려의 토질 및 기후와 달리 한반도 남부는 꼭 그러한 농기구가 없어도 그 이상 농경 생산력이 풍부했다고들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그걸 어느 한쪽의 잣대에 굳이 끼워맞춰야 겠습니까?

원로 고고학자 분들이 많이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단 파봐야 안다. 우리가 지금 아는 것이 다 맞는 것이 아니며, 100%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맞습니다. 신자료는 계속 나올 수 있고,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이 과거 문화 요소 중 과연 몇 %나 될까요?


6. 웅진성은 공주시가 발굴 자체가 안 되므로 모른다. 풍납토성과 상황이 다르다. 공산성은 임유각이라도 나왔고 이걸로 재현단지도 만들었는데 풍납토성은 이 수준도 안 된다.

만약 풍납토성이 산성이었다면 적어도 이성산성만큼은 조사가 진행되었겠죠. 평지성이니깐 이 문제가 나오는 거다. 공주시만 해도 블레이드님 말씀대로 발굴이 안 되서 왕궁이 안 나왔을 수 있지 않은가, 풍납토성은 그럼 왜 그 잣대를 못 들이대는가? 일부 발굴이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파 봤는데 없으면 없는거다? 땅 속에 뭐가 있는지 어찌 그리 확신하는가? 무슨 근거로?

또한, 한성백제 시기 왕궁과 웅진기, 사비기의 왕궁이 반드시 같다고 보는가? 이미 고고자료 상으로 한성기와 사비기는 큰 차이가 있는데? 웅진기는 뭐 알려진 바도 거의 없고...

조건은 어디나 다 똑같다. 공주시가 만약 발굴이 잘 이뤄져 땅 속에서 왕궁이 나오든, 안 나오든 했다면 풍납토성처럼 난리가 났겠지. 하지만 아니다. 풍납토성만 유독 그렇다.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이기 때문에. 솔직히 백제의 사성이든, 아니면 문헌에 없는 백제 성이든 조사가 이뤄지고 보존되는 것은 마땅하다. 하물며 조선시대 유적도 보존되는 판국에. 이게 자꾸 주변에서 왕성이다, 그래서 지켜야 한다라는 인식이 조성되니깐 왕성 여부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그것이 경제 논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그런 전제조건 깔지 않고, 그냥 서울 한복판의 백제시대 유적으로 접근하면 보다 객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미 해당 유적을 담당한 발굴조사자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힘드니 다른 백제 고고학 전공자들의 연구가 많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고 말이다.

어느 유적이 됐든, 기본적으로 고고학에서는 제대로 정밀발굴이 이뤄지지 않으면 뭐라고 얘기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지금껏 풍납토성 관련자들이 성급하게 무슨 얘기를 했다고?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그 사람들 얘기다. 모든 고고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면 오산이다. 그리고 고고학자의 논리를 깨려면 고고학적 방법론을 들이대야 한다. 거기에 대놓고 아무리 다른 방법론을 들이대봤자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논쟁은 제자리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역사학자들의 지금까지의 접근은 부족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7. 드라마와 백제의 이미지 문제

블레이드님의 우려 십분 공감한다. 문화 컨텐츠로서 '사극'은 무시 못 할 녀석이다(중국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극을 미친듯이 찍어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처럼 지 멋대로 사극을 만드는 방송인들이 제대로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사극의 폐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이미 학자의 영역을 넘어선 것 같다. 만약 역사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가 방송작가나 PD를 겸임한다면 아주아주 좋겠지만, 그건 현 단계에서 무리가 있을테고...

단, 필자가 보기에는...현 단계의 사극 제작자들 정신상태를 봤을때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라는 학계의 중론 때문에 근초고왕에서 그렇게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냥 공부 안 하고,덜 알아보고, 조사 제대로 안 하고 상식 선에서 만들었다는 생각밖에는 안들기 때문이다. 그런걸 신경쓸 사람들이었다면 진작에 안 그렇게 했겠지 싶다. 과연 근초고왕 제작자가 얼마나 많은 백제사 혹은 백제 고고학 관련 개설서나 연구서를 읽어봤겠는가. 그건 오히려 우리가 오바해서 그 사람들을 주제넘게 판단한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백제에 대한 인식이 드라마로 인해서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우려하는 바이다. 특히 마지막회 엔딩 멘트 들으면서 정말 뿜었다는...-.-;;; 백제가 바보란 말인가? 그런 나라가 고구려랑 맞짱을 떠? 쯧쯧쯧.




저 역시 블레이드님과의 이번 토론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잘 흘러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토론을 보면 일단 고고학과 역사학의 간극을 메꾸기에는 이미 블레이드님과 제가 너무 멀리 떨어진 길을 가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요.

그럼 다음 주제를 기대하겠습니다.

덧글

  • 대공 2011/06/10 17:30 # 답글

    잘 배워 갑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6/11 00:12 #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과향기 2011/06/10 19:26 # 답글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영화... 이건 작가들의 영역이고, 새로운 창작의 영역이라...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작가들이라 흥미를 끌기 위해... 이런 저런 가공을 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이 허구인 경우가 많더군요.
    역사적 사실 또는 연구성과와 사극 내용의 차이를 일일히 따지면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죠. 현실에서는
  • 루치까 2011/06/10 19:46 #

    음. 완성도의 문제죠. 각색을 하더라도 최대한 얼마나 그 시대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캐리비안의 해적 4를 보면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historian'이 찍히더군요.
  • 사과향기 2011/06/10 20:45 #

    캐리비언의 해적은 소품, 배경이 영화 속 시대상에 잘맞아서인거 같네요.
    그러나 그 내용은 가공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한 외국의 경우란 역사적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글레디에이터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행적은 상당부분 사실에 부합하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허구이고, 라스트사무라이는 흐름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 허구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또 브레이브 하트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만 프랑스 출신 왕세자비와의
    맨스는 글쎄요? ㅎ 위 영화들의 완성도는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쉽게 접하는 매체에서 역사적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가공된 얘기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루치까 2011/06/10 21:32 #

    일단 기본적인 전제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이를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에 돌릴 수 있느냐란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작가가 역사학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어렵고, 또 각색을 거치면서 허구적 요소가 들어가는 이상, 그 시대에 대해 객관적으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역사학전공자 집단이 존재해야 하고, 또 외국에는 이미 그런 체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즉, 작가의 역량은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작가가 그런 작품을 쓰는데 시청자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극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작가가 그런 작품을 쓰는 것이 문제겠죠. 한국의 대중이 최소한의 역사적 지식 없이 사극을 감상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역사관을 갖고 어떻게 보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죠. 적어도 근초고왕과 광개토태왕은 그런 수요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 사과향기 2011/06/10 23:16 #

    소재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고, 자유입니다.
    꼭 역사만이 아니라 물리적,의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 작품 속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죠.

    작가가 대중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느냐가 제일 중요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지 받는다면 어느 선까지 받을지는 작가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문헌에 몇 줄 나오지 않는 내용만으로도 1,2시간짜리
    영화에서 수십편 장편시리즈물까지 만드는 상황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지식이
    절대적인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일일히 확인하기 어렵고, 또 작품 자체에 빠져들면
    그나마 아는 것도 무용지물이 되기 쉽상이죠.

    바로 이런 간극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창작의 자유와 제한된 지식을 가진 일반인 간에
    역사소재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의...
  • Warfare Archaeology 2011/06/11 00:21 #

    사극이냐, 다큐멘터리냐...

    참 그 中道를 지키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 소하 2011/06/10 20:58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한문이야 배우면 해석할 수 있지만"
    한글자 한구절을 제대로 해독해 내기 위해서 몇날에서 몇년을 기다리며 숙고하는 저로서는 매우 가슴 아픈 말입니다. ㅜ.ㅜ
    역사도 그렇지만 문자(한문)의 시대성과 공간성을 무시하고 해석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흑흑!
  • Warfare Archaeology 2011/06/11 00:19 #

    아!! 또 그렇게 돼나요??? 쩝...그런 의도로 쓴 글은 아니지만...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소하님...-.-;;

    다시 구체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제 생각입니다.

    한문 해석은 제가 볼때 기술(skill)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즉,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고, 훈련을 통하여 거듭하다 보면 실력은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고학 발굴은 단순히 기술을 배웠다고, 또한 그 기술을 갖고 오래도록 현장에 임했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문헌은 어느 정도 해석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발굴의 경우, 땅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올지 모르니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론을 연구하고, 절대 기존의 고정관념화된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쓴 말이었습니다...

    죄송죄송 -.-;;

    암튼, 역사도 그렇지만, 문자의 시대성과 공간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점에는 절대 공감합니다. ^^;;
  • Warfare Archaeology 2011/06/11 00:20 #

    ㅇㄹㅇㅇ님...

    반말은 하지 마십쇼! 제가 블로그 맨 위에서 공지사항으로 띄어놨을텐데요...

    그리고 그런 얘기는 소하님 블로그에서 하시던가, 님하 블로그에서 하십쇼.

    제발 남의 블로그에서 분란 조장하지 마십쇼. 알겠습니까?
  • 블레이드 2011/06/11 08:41 # 답글

    따다붙이기 좀 가능하게 해줘요. 인용하기 힘들어서 자꾸요약을 하게 되는데...
  • Warfare Archaeology 2011/06/11 10:38 #

    음...그건 위젯 자체의 기능이 그래서...

    그냥 스크랩도 아니고, 남들이 따다 붙이는건 좀 그래서요. 죄송함다~

    그냥 창 2개 띄어놓고 하시면 안 될까요?? 블레이드님...

    저는 그렇게 하고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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