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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나무(숲) 고고학

이번에 수업듣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환경고고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인데, 거기에 제출할 리포트가 하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삼국사기』 에 나오는 기후(이상기후 및 천재지변) 관련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것이 야기하는 정치적 혼돈, 전쟁, 경제적 파탄, 기형동물의 등장 등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기존에 나온 삼국시대때 기후 관련된 논문들은 대부분『삼국사기』에 나오는 데이터를 계량화해서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뭄 몇번, 홍수 몇번 등등만 정리하고 마는 것이라 해야 하나?1 거기서 조금 더 진전된 논문이 그러한 데이터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서 지역성을 밝힌다거나, 시기별로 기후 변화의 주기를 파악하는 논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2.

그밖에 필자가 리포트를 작성하려는 부분에 대해서도 기존에 이미 선행 연구사례들이 있다3. 다만, 문제점은 각주에 달린 참고문헌을 보면 알겠지만, 삼국시대 관련 연구성과는 극히 적다는 사실이다. 한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서 삼국시대를 일부 언급하는 경우가 있고, 삼국시대만을 대상으로 한다 하더라도 이 역시『삼국사기』에 기록된 정보 이상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예를 들면, 몇년에 홍수가 났더니 그해에 나라에서 구제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식이다). 즉, 현재까지 삼국시대 기후에 대해서는『삼국사기』안에서 기후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뽑아내 수치화하고, 이를 나름의 분석 과정을 거쳐 지역성과 시대성을 부여한 다음, 농경(아무래도 기후와 가장 많은 연관성이 있기 떄문에), 구제, 전쟁, 정치 등 관련된 기록을 정리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자아~그럼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가 하고자 했던 것도 비슷한 내용밖에는 안 나올 것 같은데 뭘 하려고 했냐~하면, 필자는 이를 고고자료와 좀 연관시켜서 이해할 수 없나 고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전에 소개했던 신보배의「고대 김해의 철생산과 묘제의 변화에 대하여」와 같은 논문이 그러하다. 물론 그 논지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와 환경변화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여 이를 토대로 묘제라고 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논의한 것은 기존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례를 좀 더 찾아서 러프하게나마 정리를 해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간단하게 6세기 무렵 한반도 중부역에 대한 기후 및 농경 관련 기록을,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탄화미나 탄화조 등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김해의 철생산이 묘제에 변화를 줬다는 시각을 평양 일대의 봉토석실분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의문 같은 것이 있겠다. 뭐 수업 초기에만 해도 여기서 리포트 하나 써서 논문 투고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업무에 치이다보니(-.-;;) 일단은 리포트를 제출하고 추후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쪽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가만히 위에 언급했던 자료들을 훓어보면서 든 생각은...수많은 기후 변화가 있지만 그중 인간과 가장 밀접한 분야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단순한 天災는 인간이 남긴 물질자료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데 어느 정도 제한이 있겠다~싶었기 때문에 人災가 될만한 분야를 한번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나무(木), 숲(森林)이었다. 오늘날 나무는 분명 주변에 널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수목 사업을 벌여 가능한 현상이며, 지금 목재가 주요 연료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실제 압록강 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면 죄다 붉은 색의 민둥산 뿐이다. 심지어 금강산 일대조차도). 분명 과거에는 나무를 많이 벰으로써 그것이 인재로 작용하고, 천재와 결합하면 더욱더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무슨 패키지도 아니고. ^^;;). 특히나 과거에는 나무야말로 모든 건축자재, 생활용품, 연료 등으로 활용되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지금 주제를 약간 돌려서 나무(숲)와 관련된 것으로 범위를 좀 한정시켰다. 6월 중순에 발표가 있고, 방학 중에 리포트를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일단 시간은 약간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은 나무(숲)도 삼국시대 전체를 다 하기보다는 고구려에 집중시켜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아직 목차는 구체적으로 작성하지 않았지만 대략 기존 선행연구(삼국시대 기후와 관련된 것들, 그리고 신보배의 논문 등)들을 언급하고 나무(숲)과 관련된 항목이 뭐가 있나 정리를 쫙 해볼 생각이다. 우선 가뭄과 산사태, 홍수, 산불 등의 기록을 정리하고(필자 기억에 고구려는 산사태나 홍수 관련 기록이 거의 없다. 과거에「고구려본기」,「백제본기」,「신라본기」안에 있는 기록들을 정리했던 적이 있는데 이를 좀 더 분석해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에는 건축자재, 연료, 생활용품 등등 당대 고구려인이 나무를 어디에다가 썼는지를 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고구려의 온돌이었다!!

온돌은 현재 북옥저 일대에서 발원하여 고구려와 그 이남, 한편으로는 서쪽의 북흉노 일대까지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특히 쪽구들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주거 문화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온돌의 단점으로 지나친 연료의 소비(클릭)가 거론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구려와 조선의 영토 크기, 영토 내 산림의 비율 등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봐야 겠지만, 상당히 후대인 조선에서도 온돌때문에 나무가 부족해 난리인데 고구려 때에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실제 최근 모 학회에서 강인욱 선생님이 북흉노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정주국가化'를 꼽았던 적이 있다. 즉, 흉노가 남북으로 나뉜 후 남흉노는 철저한 한화 정책을 펴면서 경제적-정치적 지원을 받아 성장하지만 그와 달리 북흉노는 자구책을 강구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흉노는 아마도 유목국가가 아닌 정주문명의 영토국가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했고,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온돌 시설을 갖춘 대단위 취락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온돌 시설을 갖춘 수십기의 취락이 유지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어마어마한 산림이 필요한데, 북흉노 영토 내에서 그 정도의 연료를 공급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만약 수입했다고 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럼 고구려는 수백년간 온돌 사용은 물론 각종 건축자재 공급, 연료 공급 등을 담당하면서 어떻게 나무의 부족을 느끼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고구려에서는 나무를 정책적으로 심어서 관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만약 이것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면 논문의 결론으로 적절하겠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것을 고고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것이 이제 필자가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물론 죠몽시대(우리로 치면 신석기시대 말기쯤) 일본의 산나이마루야마 유적(三内丸山遺跡)을 보면, 그동안의 학계의 상식을 뒤엎는 거대한 대형건물지와 수백기의 주거유적 등이 나와서 주목되었는데...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이 취락 주변에 의도적으로 산림을 조성해 자신들이 쓰는 목재들을 관리했다는 사실이다(아마 학부생 때였을텐데, 처음 이 얘기를 강연해주시는 일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깜놀했다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전 식물고고학회에서 사사키 유카 선생님이 발표하신 내용(죠몽시대 식물이용과 재배)에서도 이런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 진행된 이 정도의 연구가 국내에서 이뤄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자료를 모으면 어느 정도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은 현재 하고 있다.

암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한번 언급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1. 장권열, 1987,「삼국시대 이전의 농업재해와 그 대책」『경남문화연구』10, 경상대경남문화연구소.
    윤순옥·황상일, 2009,「삼국사기를 통해 본 한국 고대의 자연재해와 가뭄주기」『대한지리학회지』44-4, 대한지리학회.
    강철성, 2011,「고대 한국의 자연재해 분석-신화적 사상을 중심으로-」『한국지형학회지』18-4, 한국지형학회.
  2. 박창용·이혜은, 2007,「삼국시대의 가뭄 및 호우에 관한 연구」『기후연구』2-2, 건국대학교기후연구소.
  3. 이호영, 1971,「한국 고대사회의 재해와 구빈책-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를 중심으로-」『사학지』5, 단군사학회.
    강판권, 2007,「청대 산동성의 자연재해와 정부의 대책」『계명사학』18, 계명사학회.
    김석우, 2007,「전쟁과 재해」『동양사학연구』99, 동양사학회.
    송기호, 2007,「기근과 식인」『대한토목학회지』55-12, 대한토목학회.
    이정호, 2007,「고려전기 자연재해의 발생과 권농정책」『역사와 경계』62, 부산경남사학회.
    김오진, 2008,「조선시대 제주도의 기상재해와 관민의 대응 양상」『대한지리학회지』43-6, 대한지리학회.
    정성일, 2008,「조선의 기근과 일본쌀 수입 시도(1814~15년)」『한국민족문화』31, 부산대한국민족문화연구소.
    홍유미, 2008,「아일랜드 대기근과 민족적 기억」『현대영미드라마』21-2, 한국현대영미드라마학회.
    김대기, 2009,「송대 재해구조와 진제원칙」『인문과학연구』22, 강원대인문과학연구소.
    김상범, 2009,「당대 자연재해와 민간신앙」『동양사학연구』106, 동양사학회.
    김대기, 2011,「북송대 자연재해와 재해 대응체제」『인문과학연구』30, 강원대인문과학연구소.
    김재호, 2011,「낙동강 개발의 역사와 민속의 토대 변화」『한국민속학』54, 한국민속학회.



덧글

  • 칼슈레이 2012/05/23 12:49 # 답글

    오오 제대로된 정리된 글이 나온다면 정말 흥미로운 글이 될것 같습니다 ㅎㅎ
    존 펄린 "숲의 서사시"의 한국판일까요? 추후에 올라온 WA님의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Warfare Archaeology 2012/05/23 12:52 #

    아아~『숲의 서사시』급으로 오해하시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그냥 아주아주 작은 범위에 걸쳐, 아주아주 미시적으로, 그것도 러프하게 건드려볼까 하는 겁니다.
    논문으로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리포트 제출로 끝나는거죠 뭐. ㅋ 암튼 함 해보겄습니당!
  • 잠꾸러기 2012/05/23 15:11 # 답글

    죠몽시대에도 임산물 관리 흔적이 보인다면 그보다 발전됐을 고구려에도 산림청(?)이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Warfare Archaeology 2012/05/23 21:09 #

    ㅋㅋㅋ 근데 중요한 건 일본은 죠몽시대 유적도 저렇게 고고학적으로 조사가 이뤄져 뭔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자료가 없다는 거죠. 쩝...아쉽습니다~아주 많이~~
  • 구데리안 2012/05/23 20:08 # 답글

    좀 먼 시대 이야기입니다만, 조선 전기 부터 내시부 쪽에서 조림 관련 인원들이 직접 한성주변의 산지에서 작업한건 유명한 이야기죠.
  • Warfare Archaeology 2012/05/23 21:10 #

    음. 그렇죠. 그나마 문헌이 꽤 있는 조선시대야 산림자원의 활용에 있어서 시기별 변화상이 어느 정도 확인 가능한데...고려시대만 해도 찾기 어렵고, 그보다 이른 삼국시대는 더욱더 감이 안 잡힌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쩝...지금 그래서 계속 고민 중임. ^^;;;
  • 구데리안 2012/05/25 00:33 # 답글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2/05/23/0906000000AKR20120523067600021.HTML

    좀 늦은 소식인데 보셨습니까? 지금 난리도 아닐거 같더군요.
  • Warfare Archaeology 2012/05/25 13:15 #

    이미 접한 소식입니다만, 암튼 감사합니다. ^^

    저런게 일본에는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이번에 좀 큰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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