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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 한반도 최초의 주민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대한 흔한 착각 by 야스페르츠


구석기시대에 대한 비전공자들의 생각은 생각 외로 단순한 것이 사실이다. 그건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투박한 석기를 쓰고, 때론 공룡이나 매머드를 사냥하며, 이동 생활을 하고, 노숙자같은 행색(?)으로 살았을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즉,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리다(정확히 그 시대를 인지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개중에는 야스페르츠님이 쓴 포스팅에 나온 것처럼, 구석기시대가 이를수록 좋다, 한민족의 역사는 유구하다~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것에 집착 또는 열광할까? 싶기도 하다. 당장 고고학을 전공하는 필자만 해도 구석기시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은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 

하지만 오랜만에 쓰는 포스팅이기도 하고, 몇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있어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일단, 아슐리안 석기에 대해서 서양학계가 갖는 그러한 '말도 안 돼~' 식의 반응은 필자도 들은 바가 있다. 또한, 전곡리유적의 연대를 수십만년 전으로 잡았던 해당 유적의 조사자가, 저명한 미국의 구석기 전공자가 유적을 방문해 '그렇게 연대가 이르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이는 아마도 구석기시대의 연대가 올라갈수록 우리 역사가 더 대단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그 유명한 구석기 날조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며, 전 일본 국민과 학계, 언론이 열광했던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금석병용기라는 용어가 사라지게 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좋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학계에서 이러한 시각은 이제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구석기인에 대해 논할 때에도, 그들을 한민족의 시조(?)나 조상으로 여긴다기 보다, '한반도'에 살았던 최초의 주민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니 말이다. 혹시 아직도 구석기인이 곧 우리 민족의 조상이다~라는 북한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 분들을 위해 몇자 더 적어보도록 하겠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도 전기구석기시대의 말기에는 출현하였고, 중기구석기시대에는 사피엔스의 또 하나의 亞種인 네안데르탈인, 즉, 호모속 사피엔스종 네안데르탈아종이 널리 퍼졌으며, 중기구석기문화 하면 네안데르탈문화를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후기구석기시대에는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추고 우리들과 똑같은 현생인류인 사피엔스아종이 전세계를 차지하였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이후의 일이며, 그 발견 역사는 짧다고 하겠으나 현재는 남북한 모두 합쳐서 열 군데 이상이나 구석기 유적이 알려지게 되었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는 전기구석기문화, 중기구석기문화, 후기구석기문화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으며, 그 연대는 4~50만 년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구석기문화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되었으며, 이제 우리 구석기문화 연구의 과학화와 잘 훈련된 연구 인원의 증가가 더욱 더 요망되게 되었다고 하겠다. 

金元龍, 2001, 『韓國考古學槪說-第三版-』, 一志社, pp.8-20.

한반도에서도 적어도 50만 년 전후한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중략)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 문화 배경에 대하여 차드(Chester S. Chard)는 한국을 포함하여 몽고 · 시베리아 · 만주 · 일본 등을 동일 문화권으로 보면서 만주가 동북아시아 인류사의 중심 지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그는 그러한 지역에서는 후기 홍적세에 이르러 비로소 인류가 생활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략) 분단된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 문화 연구가 겨우 30여 년 되었기 때문에 이웃의 구석기 문화 연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었지만 내적 연구의 충실성과 동시에 인접 지역의 연구도 병행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최무장, 2004, 『한국선사 고고학 개론』, 백산자료원, pp.149-155.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서 인류는 약 18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 현대인의 모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20~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했다. 이후 진화를 거치며 고도의 지능과 언어, 상징행위 같은 새로운 차원의 문화를 갖게 된 현대인은 늦어도 6~5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가, 이전 단계의 고인류가 가지 못한 오세아니아에는 5만 년, 뉴기니아 고산지대에는 4만 년, 아메리카 대륙에는 1만 5천 년 전 무렵 다다르게 되었다. (중략) 북한에는 북한정권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선전하려는 정치적 이유에서 구석기시대 유적과 화석인류 조사를 중요시해 왔ㅇ며, 한민족은 한반도 내에서 수십만 년 동안 문화적 · 형질적으로 독자 진화했다는 소위 민족단혈성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사시대 이래 한국인은 호모 사피엔스로 불릴 수 없는 특이한 생물학적 집단을 이루었을 것이다. (중략) 후빙기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모든 동식물의 분포와 생태가 변했으며 인류 역시 새로운 적응양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후빙기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석기시대의 생활양식의 그대로 유지된 경우를 가리켜 중석기시대라 부르고 있다. (중략) 한반도에서는 플라이스토세의 종식 이후 후빙기 초에 해당하는 중석기시대와 관계된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고고학회, 2007,『한국 고고학 강의-개장 신판-』, 사회평론, pp.28-49.

이 정도가 현재 한국 고고학계의 구석기시대에 대한 시각이다. 구석기시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개인적으로『한국 고고학 강의-개장 신판-』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구석기시대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대해서는 다음 문장들을 읽으면 상대적으로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반도에 70만년 전은 커녕 10만년 전의 유적이라도 과연 확실한 게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교과서에 그런 무책임한 설명이 실린 것은 아마도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 퍼져 있는 소위 '삼최증(三最症)' - 즉 유적을 발견하거나 조사하면 무조건 최초, 최고, 최대라고 언론매체에 대대적으로 선전부터 하고 언론의 '약발'이 떨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정신질환-과 북한이나 중국에 70만년 전의 유적이 있다고 우기니 우리도 질 수 없지 않는가 하는 '민족사적 정통성 증후군'의 한 전형적 증세에 복합적으로 감염된 분들 때문인 듯 하다. 

아직까지 한반도에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그 나이를 10만년 단위로 셈할 수 있는 유적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중략)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구대륙 각지로 진출한 것은 1백70만~1백80만년 전부터니만큼, 한반도 어느 구석엔가 수십만 년 전 이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아무튼 현재로서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중략)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확실한' 구석기 유적의 숫자는 50여 개 정도라고 추산되며, 그중에는 그 나이를 10만년 단위로 셈할 가능성이 있는 유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사항은 단지 한반도에는 적어도 5만년 전 내지 7, 8만년 전에는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1만 5천년 전 무렵이면 전국 각지 어디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 정도다. (중략)

첫째는 상원 검은모루동굴이 구석기 유적일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중략) 민족단혈성기원론의 주장을 유전학적으로 풀이하자면 조선민족은 50만년 전부터 조선반도에 고립된 채 내부적 진화만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의 조선민족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아닌 이상한 학명으로 불리는 특이집단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지적만으로도 구석기 시대와 민족형성에 관한 주체사관의 기본논리체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중략)

학자에 따라 견해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들의 나이는 대략 기원전 5천년경이라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빙하 시대가 끝난 다음 짧아도 3천년에서 길면 4, 5천년 정도의 시간에 걸친 한반도 주민의 활동흔적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셈이다. (중략) 이러한 시간표상의 단절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는 점은 당연히 학계의 큰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한국문화'라고 부르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양식의 원형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며, 도대체 한국인은 어떻게 해서 등장한 것인가에 대해 상당한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즉,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주민들은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국문화가 형성돼 온 과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고고학 전공자들에게 사회대중은 한국문화나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중략) 학계의 정설을 따르자면, 구석기 시대가 끝난 뒤 수천 년에 걸쳐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구석기 시대의 주민들이 빙하 시대가 끝나며 환경이 변하자 어디론가 떠났고 이후 수천년 동안 한반도는 텅빈 땅이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말은 즉 현재의 한반도 주민과 관계된 논의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사실 구석기 시대 이후 주민이 한반도를 떠나고 신주민이 들어오고 하는 식의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지난 수만 년 내지 수십만 년 동안 계속 끊이지 않고 살았을 것인데, 따라서 밑도 끝도 없이 한민족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학술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복잡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민족의 기원에 대한 논의란 논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민족의 실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완결되지 않는 한 끝없이 겉돌 수 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된다.(중략) 민족기원의 연구라는 주제는 누구나 인저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에 입각해 뚜렷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진지한 고고학적 연구과제라기보다는, 한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 들어가는가 하는 사회적 기대치 내지는 그 사회의 여러 학문의 성원들이 왜 이 문제에 집착해야 하는가 하는 패러다임 차원의 문제와 관계된 지식사회학적 논의의 대상으로서의 의의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뜻이다. 

이선복, 1996, 『이선복 교수의 고고학 이야기』, 가서원, pp.31-119.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구석기시대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하지만 그 고민은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일까? 라는 것이 아니라, 구석기시대 이후 긴 공백 끝에 시작된 신석기시대를 연 주민들과 우리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이다. 구석기인들은 그야말로 한반도에 최초로 이주해 살았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보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물론 북한에서는 아직도 구석기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단일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주장하는 쪽이 북한 말고 또 있다. 그건 바로 북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중국이다. 의사이자 해부학자이며 유명한 방송인인 앨리스 로버츠가 중국으로 건너가 고인류학자 우신즈 교수 및 유전학자 진리 교수와 나눈 대화는 그러한 중국 학계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자인 베리 서트만에 의하면 중국 정부는 고인류학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 중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중국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중략) 

고대 호모 사피엔스와 현대 호모 사피엔스 간에 수만 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은 아마도 두 종이 유전적으로도 해부학적으로도 아예 다른 종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원인의 화석을 직접 본 나는 중국인의 조상이 베이징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화석 자료 외에 우(신즈) 교수가 중국에서의 지속적인 인류 진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든 증거는 석기였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경우 아프리카로부터 나온 현생인류가 도착함과 동시에 갑자기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석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새로운 석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은 현생인류의 화석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중략) 

중국인의 DNA에 M168 돌연변이가 모두 나타난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동아시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몽땅 멸종시키고 새로 그곳에 정착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베이징원인의 후손은 오늘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중략) 유전학은 동아시아에 어떤 경로를 통해 현생인류가 정착하게 되었는지도 설명해 준다. Y염색체는 태국과 캄보디아와 같은 남쪽 지방에 훨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처음에 사람들이 남쪽으로 들어와 점차 북쪽으로 퍼져 나갔음을 의미한다. Y염색체 연구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6만~2만 5천년 전에 동아시아에 처음으로 현생인류가 이주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앨리스 로버츠(진주현), 2011, 『인류의 위대한 여행』, 책과함께, pp.317-330.

우신즈 교수는 중국인의 선조가 베이징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진리 교수는 유전자 분석 결과,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정부가 지지하는 정설은 우신즈 교수의 입장이다.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주장이 계속되는 것, 또는 이러한 인식이 만연한 것은 이처럼 단일민족에 대한 환상, 혹은 해당 민족의 현재 거주범위(영토 혹은 국토)가 갖는 역사성과 정통성 등에 대한 강한 집착 및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EU라는 공동체로 묶인 유럽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남한과 일본의 경우, 이러한 인식은 언론과 비전공자 사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학문적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인 것 같다(물론 아직도 필자가 아는 일본 학자 중 한국 → 일본으로의 문화 전파를 인정하지 않고 싶어하는 분도 계시긴 하다). 그리고 공산국가인 북한과 중국에는 그러한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한국사 혹은 한국 고고학에서 구석기시대를 다루는 이유는 구석기인이 한국인의 조상 혹은 우리 민족의 시원이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의 역사(말 그대로 韓國史)를 다루는데 있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한국사의 범위를 논하는데 있어, 구석기~청동기시대에 대해 동북아 전체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시각을 지지한다(그리고 점차 개설서나 교과서에서도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국사의 시작을 서술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하다). 그에 반해 금나라의 역사를 한국사에 집어넣자는 몇몇의 주장(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두 집단을 그렇게 엮을 수 있을까 싶다)이나 만주 일대의 역사만 따로 떼어 요동사로 나누자는 주장(그건 현재 영토를 기준으로 그 영토의 지난 역사성까지 모두 소유하겠다는 중국의 주장을 역발상으로 접근한 또 다른 잘못된 시도라고 생각한다) 등은 쉽게 인정하지 못 한다.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 특정 민족, 즉 현재 멸종되지 않고 개체수가 유지되는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역사를 논하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다만, 그 민족이 수천년 이상을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채 존속되었다는 상상은 금물이며, 그러한 민족에 얽매여 역사를 바라볼때 일종의 선입관을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각에서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도 '한반도에 최초로 살았던 주민'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덧글 1. 구인류와 신인류 간의 섹스??

솔까역사님의 포스팅(
http://trustle.egloos.com/1738562)을 보고 몇자 더 추가로 적어보겠다. 솔까역사님은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이 한민족의 선조는 아니지만,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혈이 있었다는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란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일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신체적 결합에 대해서 대세는 불가능했다는 쪽이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양자가 장기간 같은 영역 내에서 공존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접촉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브라이언 페이건(김수민) 2012: 23-52). 그리고 더 이상 소위 크로마뇽인이 기존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그 자리를 대체했다~라는 시각도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와 달리 양자가 서로 성적 결합을 맺었으며, 이러한 종간교배를 통해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남게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그레고리 코크란 · 헨리 하펜딩(김명주) 2010: 55-86). 후자의 경우, 현재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소수나마 확인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현생인류는 더욱더 진화하고 발전했으며, 그 진화의 가속화는 시간이 지나고 문명화가 이뤄질수록 빨리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앨리스 로버츠가 인터뷰한 오펜하이머처럼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유전적으로 섞인 증거가 없다 해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양자가 유전적으로 섞였지만 그 후손이 더 이상 자손을 낳지 않았다거나, 그런 유전자가 지금까지 채취된 샘플에서 없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2011: 174-175).

이상의 시각을 정리해보면...일단 현재 한반도에서 확인된 전기 구석기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상원 검은모루동굴 유적부터 전곡리유적까지, 혹자는 수십만년 전이라고 하지만 혹자는 6~5만년 전, 5~4만년 전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종간교배도 이뤄졌을 수도 있고,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유전자가 단 몇개라도 현생인류에게 유전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때 한반도에서 확인된 구석기인들 중 일부는 분명 네안데르탈인과 접촉해 그들의 유전자 일부를 받아 좀더 진화된 현생인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일부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엄연히 현생인류이며, 네안데르탈인과는 다른 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구석기시대가 현생인류의 Out of Africa 이전에 유라시아로 퍼졌던 호모 에렉투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정확한 증거가 나온다면 모를까(만약 전곡리유적이 30만년 전 유적이라면?), 그것도 불명확한 시점에서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이 현생인류와 완전히 다른 종인 호모 에렉투스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경향을 보면,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유적은 모두 현생인류의 것이며, 그보다 이른 시기의 것이 있을 가능성은 물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한반도 내의 구석기유적이 현생인류의 것이 확실하다고 해서 곧 구석기인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다~로 직결되는 것이 아님은 위에서 논한 바 있다. 우리는 아직 구석기~신석기시대 사이의 공백기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여기에서 솔까역사님이 말한 혼혈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간의 유리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밖으로 뻗어나갈 시점의 가정이라는 점과 결론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살아남았다는 근거는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하다가 결국 멸종했다).

다시 말해, 만약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이전의 호모 에렉투스에 의해 한반도 구석기시대가 개시되었다면 이는 현생인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류사로 봐야할테니(이때 아직 호모 사피엔스는 생겨나지도 않았다), 구석기인과 현대 한국인이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한반도 구석기시대가 현생인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6~5만년 전으로 편년되는 것이 맞다면) 그 구석기문화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현생인류이지, 호모 에렉투스 단계의 네안데르탈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구석기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일부 수용했겠지만, 엄연히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즉,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혼혈이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구석기인은 현대 한국인과 동일한 종이라고 보는 시각은 일부는 맞고(양자간 혼혈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는 틀린 말(혼혈이 있었으므로 구석기인과 현대 한국인이 동일한 종은 아니라, 한반도의 구석기문화가 현생인류가 이룬 것이므로 현대 한국인과 동일한 종이다)임을 알 수 있다.

암튼 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기사를 참고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종간교배 가능성 (
http://scienceon.hani.co.kr/28355)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와 만나기 전 멸종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10513100000000268&classcode=01)


※ 참고문헌

앨리스 로버츠(진주현), 2011, 『인류의 위대한 여행』, 책과함께.
브라이언 페이건(김수민), 2012, 『크로마뇽-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현생인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더숲.
그레고리 코크란 · 헨리 하펜딩, 2010,『1만년의 폭발-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글항아리.

덧글 2. 내용 일부 수정

덧글 1의 내용 중 호모 에렉투스 '단계'와 호모 에렉투스를 혼동해서 사용한 부분이 있고, 그러한 호모 에렉투스를 네안데르탈인과 별 구분없이 혼용하였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정정하였다. 더불어 오류를 지적해주신 산마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이다. 더불어 구석기시대는 필자도 공부를 해야 아는 부분이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짚어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2/11/16 23:39 # 답글

    그런데 현생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니 선사시대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몰라도 그걸 같은 종이라고 하긴 좀 무리죠.
    아무튼 구석기와 신생대 사이의 공백에 대해선 아무래도 한반도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마지막 빙하기 원인도 좀 분분하고 말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11/16 23:59 #

    솔까역사님이 잘못 말한 점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혼혈이 있었으므로 구석기인이 현대 한국인과 동일한 종이다, 라고 얘기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주장에서의 모순은...

    1. 한반도의 구석기문화가 호모 에렉투스의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2.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시점에서 양자간 혼혈이 이뤄졌으므로 그 시점은 6~5만년전보다 빠를 수 없다.
    3. 양자간 혼혈이 이뤄졌다 해도 그 주체는 호모 에렉투스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다.
    4. 현재 한반도의 구석기문화는 시기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즉, 양자의 혼혈 여부와 상관없이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은 현대 한국인과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거기에 호모 에렉투스가 끼면서 종이 같네, 다르네의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려면 호모 에렉투스가 점유한 유적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설사 호모 에렉투스가 점유한 유적이 나온다 하더라도(전곡리가 됐든 아니든) 결국 구석기시대 후기로 오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점유한 유적만 확인되고 있으므로 역시 현대 한국인과 다른 종인 호모 에렉투스는 어느 시점에 멸종되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셈이죠.

    호모 에렉투스는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이후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들의 유전자를 지닌 후손들을 한반도에 계속 번식하게 했을 테니깐요. 그러니깐 간단히 정리하면, 솔까역사님의 말은 애초에 큰 의미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사이의 공백기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도 마찬가지인데, 아직까지 이런 과도기에 대해 고고학적으로 뚜렷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그걸 점진적 변화로 보느냐, 급진적 변화로 보느냐의 시각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할 겁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2/11/17 00:07 #

    뭐 솔까역사야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객관화 시켜 강요하니까 아마 워페어님이 쓴 이야기는 듣지 않을겁니다. ㄲㄲㄲ

    아, 그러저나 그 공백기는 적어도 아무래도 데이터화 할만큼 연구가 누적되지 못한 점도 있겠고,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도 마지막 빙하기가 준 영향이 크다보니 적어도 한반도에 꽤나 큰 영향을 준것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바다에 인접한 환경이라는 점때문에 말이죠.
  • Warfare Archaeology 2012/11/17 00:13 #

    네...아마 빙하기라는 거대한 기후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현재 구석기 전공자들 중 중석기시대를 따로 분류하려는 분도 계시지만, 그 시기를 무엇으로 나누느냐? (사용하는 석기의 차이? 생활방식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상태이며, 그러다보니 구석기시대 후기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변화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령 진짜 중석기시대 유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중석기시대로 분류될지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저도 후기 구석기인들이 싹 다 멸종했거나, 전부 다 타지로 떠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흔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 그리고 그 흔적이 후기 구석기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을 가능성(신석기시대는 분명 구석기시대와 다르니깐요. 다만, 신석기시대 조기 혹은 개시기를 설정하려는 분들도 계신데, 이 시기의 문화양상은 구석기시대 후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이 아니다 보니...흠...어렵고 재미가 딱히 없긴 합니다. ^^;;
  • 해색주 2012/11/17 00:05 # 답글

    우문현답으로 들리는군요.
  • Warfare Archaeology 2012/11/17 00:14 #

    과찬입니다...현답까지는 아니라서~ ㅎ 덕분에 저도 구석기시대에 대한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
  • 크핫군 2012/11/17 09:05 # 답글

    이걸보니 터틀도브의 가상역사소설이 생각나네요. 내용이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지 않고 아메리카로 건너가 살아서 콜럼버스의 탐험이후 현생인류와 접촉한다는의 내용이었죠.
  • Warfare Archaeology 2012/11/17 14:39 #

    흐음.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은데...흥미롭네요.
    전 네안데르탈인이 현재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늘 떠오르는 만화가 있습죠.
    <오메가 트라이브>, <오메가 트라이브 킹덤> 요렇게인데 총 25편으로 현재 완결이 된 상태입니다.
    처음에 보고 헛! 요거 뭐야!! 쇼킹한 주제일세~라고 생각했었죠. 후회하지 않을만한 만화입니다.
    (음...혹시 이미 보셨을지도. ^^;;)
  • 산마로 2012/11/17 12:23 # 삭제 답글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 인은 전혀 다른 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신빙성 있는 소스는 아니지만 위키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요. 네안데르탈 인은 동아시아에 산 적이 없습니다. 네안데르탈 인과 현생 인류가 교배 가능했느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호모 에렉투스하고라면 완전히 부정될텐데요. 위키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 인류가 만났을 확률도 없습니다만 만났다고 해도 교배의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11/17 14:56 #

    산마로님 맞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명확하게 용어 선택을 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입니다.

    솔까역사님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혈 얘기를 했을때, 저 역시 은연 중에 호모 에렉투스 '단계'의 인류 범위 안에 '네안데르탈인'을 스스럼없이 집어넣은채 포스팅을 작성한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해 네안데르탈인이 동아시아까지 온 적은 없으며 호모 에렉투스는 있었죠.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혈 이야기는 큰 상관이 없는 부분이며,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나라 구석기를 설명할때 전혀 상관이 없는 종이었죠. -.-;; 여기에서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네요(이걸 왜 어제 못 봤지...쩝)

    엄연히 말해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다른 종이며, 존속 기간 또한 다릅니다(전자가 더 먼저 등장해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에 사라졌다는 것이 학계 정설입니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나오면서 네안데르탈인과 종간교배를 통해 그들의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보다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생인류가 각지로 뻗어나가 결국 현대인의 조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약간 핀트가 어긋한 포스팅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가 만났을 확률이 없지는 않은 듯 합니다. 동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도 3만년 전에는 완전히 멸종하게 되는데, 이미 그 시기는 신대륙을 제외하고는 현생인류가 구대륙 각지로 뻗어나갔던 시기입니다. 신대륙만 일반적으로 1만 5천년 전 무렵에 건너갔다고 하고요. 또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키가 105cm에 불과한 소인 화석)에 대한 논란이 아직 일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을 또 호모 에렉투스에서 기원한 종으로 보기도 한다더군요(앨리스 로버츠는 이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었고,『한국고고학강의』에서는 일단 인류 진화표에 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생인류와 호모 에렉투스와의 종간교배에 대해서는 저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지만,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종간교배 만큼이나 가능성의 범주에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2/11/17 14:04 # 답글

    호오.. 한반도의 구석기가 현생 인류의 것일수도 있군요? 그건 몰랐던 사실... 제가 찾아본 백과사전 수준에서도 전곡리의 유적 편년이 상당히 최근일 가능성은 언급하고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주된 논지로는 2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어서 그렇게 썼습죠. 고고학계의 최신 트랜드는 더 최근으로 보나 보네요...
  • Warfare Archaeology 2012/11/17 15:19 #

    구석기 전공하시는 선생님들께 얘기를 들어보면 확실하게 수십만년 전으로 올려볼 수 있는 유적이 있다! 라고 단정짓는 것을 꺼리시더군요. 특히 자연과학분석을 통한 연대측정에 의존해야 하는 구석기의 경우(석기 형태나 서기 분석, 유물 조합군을 통한 편년은 상대적인 것으로 불분명하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구석기시대 후기의 석기 조합상과 신석기시대 조기의 석기 조합상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옛날에 조사된 유적들인지라 시료 선택에 있어서도 객관성이 보증되지 않기도 하고요. 마치 청원 소로리 볍씨에 대한 농경 개시 여부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일단 한국 고고학계의 대체적인 견해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한국 고고학 강의-개정 신판-』의 내용을 보면, 전곡리유적에서 호모 에렉투스 '단계'의 아슐리앙 석기가 분명히 출토되었습니다(이는 무스테리안기보다 빠른 것으로 호모 속이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후의 문화로 보면 될듯 합니다). 그 아슐리앙 석기 때문에 발견 직후 수십만년 전의 유적으로 알려졌죠. 하지만 퇴적층에서 4~5만년 전의 연대측정치가 보고되는 등 논쟁이 시작되고, 임진강 일대의 용암 분출 이후에 형성된 구석기유적 자체의 연대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혹자는 아슐리앙 석기가 나왔으니 호모 에렉투스 단계가 아니냐, 고 하시겠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석기 이외에 대나무 등지를 이용한 목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단순히 석기만 갖고 인류의 진화 단계를 밝히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즉, 현생인류가 동아시아까지 왔다 하더라도 그들이 원래 쓰던 석기보다 더 정교한 작업이 가능한 목기를 일찍부터 썼다면 석기는 이전 시기의 것을 그대로 써도 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보는 것 같더라고요. 당연히 목기는 유기질이라 현재까지 잔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요-이상 괄호안은 앨리스 로버츠 책 내용의 일부입니다).

    즉, 해당 지역의 유적 상부에서는 2만 9천~2만 6천년 전 사이에 일본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유적의 하한이지 상한은 아니지요. 그리고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가 한반도까지 이동한 이후의 시점일 수도 있고, 기존의 호모 에렉투스가 마지막으로 점유하고 있었던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상한인데...유적이 생성되기 직전 분출한 용암층의 연대는 40만년 전 이후입니다. 그런데 해당 구석기유적이 용암 분출 '직후'에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형성된 것인지에 따라 유적의 상한이 결정될 수 있을 겁니다.

    일부 연구자는 퇴적층 내에 2종류의 화산재가 있으며, 화산재의 분출 시점과 발견 위치를 감안하고 유물포함층이 중국에서 일정한 비율로 날아와 쌓인 황토(loess)라는 가정을 전제로 최하 유물층의 연대를 3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퇴적층의 암석학적, 토양학적, 퇴적학적 특징을 볼 때 퇴적물을 중국에서 날아와 쌓인 황토라고 보기 어렵고 두번째 화산재의 존재 역시 확실하지 않으며, 퇴적층에서 얻어진 절대연대측정치는 대부분 10만년 전 이후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용암 분출이 이보다 훨씬 최근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가 용암 본체에서 포획된 탄화목 및 용암층 아래의 퇴적층에서 최근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간의 모든 자료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합니다. 즉...정답이 없는 상태로 계속 더 알아봐야만 한다~는 것이죠.

    제가 위에서도 썼지만, 설사 전곡리유적이 우리나라 구석기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고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 단계의 인류가 점유한 것이라 하더라고, 그 이후 종이 다른 호모 사피엔스가 점유한 구석기시대 후기 유적들이 주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현대 한국인의 조상 논쟁과는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다만, 호모속의 전파와 진화, 발전 과정에 있어서 흥미로운 연구주제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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