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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및 왕험성의 위치 상고사

간만에 전쟁사 관련 논문이 나왔다 하여 간략하게 글을 남긴다.

사실 이 글은 예전에 인하대에서 고조선-위만조선을 연구하기 위한 공동연구팀이 꾸려졌다는 기사를 보고 나중에 결과물이 나오면 한번 코멘트를 달아야지 해서 생각했던 글이다. 아마 1년 전쯤 나온 기사였던 것 같은데, 최근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왔길래 논문도 한번 읽어보고,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도 정리하고자 한다(아래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인하대 공동연구팀, "위만조선 수도 '왕험성' 한반도에 없었다" - 中 동북공정 반박 논리

이 기사를 보고 관련 논문을 다운받아봤다.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으며, 원문 파일도 첨부해뒀다(논문은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며, 이밖에 다른 논문들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들려보시는 것도 좋을듯 싶다).

박성용 · 남창희 · 이인숙, 2015,「한나라 군사작전으로 본 위만조선 왕험성 위치 고찰-북한 급변사태시 중국의 연고권 개입 명분에 대한 함의-」『국방연구』58-2,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Chosun.pdf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글은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던 글을 수정-보완해서 올리는 것임을 먼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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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북경부터 한반도 평양까지 육군이 오려면 너무 멀다.

    1-1. 당시 한나라군은 죄수부대로서 규율 및 훈련이 부족해 전투력이 낮았다.

    1-2. 5만이라는 병력 규모에서 공성, 치중부대를 빼면 실제 전투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1-3. 도하작전과 저항 기록은 딱 한번 뿐이었다. 즉, 도하하자마자 바로 도성이 있어야 한다.

2. 현대에도 어려운 상륙작전을 당시 감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3. 기동 공간이 발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서해 연안을 빙 돌아가는 것은 너무 멀다.

4. 1년에 가까운 월동기간의 보급 과정 및 거리 문제가 있다. 

뭐 대략 다음과 같다. 뭐 그간 한-조선과의 전쟁에서 이런 부분들은 논의가 있어왔고, 늘 다뤘던 내용인지라(학술적이든, 온라인에서든)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솔직히 적지 않은 연구비를 받아서 학제간 연구팀이 꾸려져 작성한 것인데 뭐가 새로운게 있나 하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분명히 의심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당시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전투가 현재 평양 지역에서 벌어졌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조선과의 전쟁에서 살펴볼 변수들이 더 있기에 이런 부분까지 정밀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듯 싶다.

1. 한나라 군대의 군사력과 규율 수준

- 죄수부대가 정규군을 상대로 이긴 사례도 있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에 속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죄수부대라고 해서 단순히 지휘관 1명이 수만명의 죄수를 지휘하며 전투를 벌였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다. 물론 한나라가 고조선을 얕보고 상대적으로 약한 부대를 파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미 고조선-위만조선이라는 정치체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고, 흉노와 대비하며 국경의 위협으로 여겼던 한나라가 단순히 얕보고 약한 부대를 보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 당시와 지금의 발해만 해안선과 하천(수로)의 변화

- 예를 들어 장수태왕의 한성 공함때를 살펴보면, 한강이 너무 넓어서 제대로 된 도하장비 없이 도하가 힘들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1910년대 지형만 봐도 한강 가운데에 큰 섬이 있어 거대한 도하장비가 없어도 충분히 도하가 가능했다. 무려 2100여년 전 지형을 지금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본 논문에서는 역시나 지금 지형을 갖고 논지 전개를 했다)

3. 고조선의 국가체제와 국경방어체제

- 고조선이 각 거점마다 성읍을 갖추고 성읍을 중심으로 광역 지배범위를 갖췄으며, 국경까지 도로와 거점 방어지를 갖춘 체제의 국가였는지가 일단 의문이다. 강 하나 건너 바로 왕험성까지 적군이 도달했다는 건 무인지대를 지났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발해 멸망때와 비슷하다고 봐야하는지, 고조선 자체의 상황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는지 의문이다. 일단 황해를 건넜다는 기록 대신 발해를 건넜다는 기록을 봐서 지금의 요동반도 일대를 향했던 것은 맞다. 다만, 왕험성이 요동반도 일대에 위치했을지, 어디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는 역시 위만조선이 당시 관방체계라는 것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4. 전쟁 과정의 함축적 기술

- 일단 조선-한의 전쟁은『구당서』, 『신당서』나 『자치통감』 등에 적힌 고-수 전쟁처럼 전쟁 경과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1년여 간 벌어진 전쟁의 내용치고는 너무 소략한 편이다. 주필산전투만큼 기록이 적지는 않지만, 기록이 대표적인 것만 적혔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3번과도 연결되지만, 고조선이 고구려 정도의 성곽 방어체계를 갖추지는 않았을 것이고, 도성이 쉽게 포위공격 당할 정도로 야전 한번 제대로 치루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 순식간에 청군에게 도성과 강화도를 뺏긴 조선의 경우도, 공성전은 몇번 없었지만 야전은 적지 않게 이뤄졌다. 이에 대해 당시 우거왕이 왕험성에서 홀로 싸울때 왕험성을 구하기 위해 한군과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김성남, 2005,『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수막새,  pp.39-40). 즉, 당시 조선과 한의 전쟁은 중앙 정부끼리의 전투 이외에도 여러 전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소략하다면, 지금 남은 기록만으로 위치 비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5. 1년간의 전쟁 수행 능력

- 논자들은 1년 동안 전쟁하면서 보급선이 길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 보급선이 가까운 곳이 왕험성일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앞쪽에서는 당시 한나라의 국력이 그렇게 긴 전쟁을 유지할 수준이 안 됐다고도 한다. 뭐가 됐든 5만이라는 인간들을 1년간 타국에서 먹여 살릴 수 있으려면 상당한 규모의 보급품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충분한 기록이나 근거가 없다고 단순히 보급선이 길어지면 안 된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모구검이 고구려를 휩쓴 기간도 따지면 1년 혹은 그 이상이지만, 모구검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진출해 보급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근거도 없다. 근데 왜 여기에는 의문을 안 가지는 것일까? 물론 모구검의 배후에는 부여도 있었고, 선비의 지원군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록을 통해서. 앞서 전쟁 과정이 소략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한나라의 추가 군사력(전투력이 됐든, 보급력이 됐든)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둬야 할 것이다.

6. 평양 지역의 고고학 자료들

- 왕험성이 평양이 아닌데 그때부터 생겨나는 중국 묘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도성을 함락하고 도성 이외의 지역에 군현을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그럼 과연 위만조선도 그런 경우에 속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듯 싶다. 아니면 다른 왕험성 추정지에서 위만조선과 관련된 고고자료라도 찾든가. 물론 그게 어렵다는 건 알지만. 단순히 문헌 해석과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진군로 예정(역사지리학적 해석보다는 지도에 선 긋고 가볍게 얘기하는 수준) 등은 그닥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 싶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위만조선의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 쓴 포스팅(클릭)이 있긴 하지만, 위만조선의 도성이 갑자기 발견되지 않는 이상, 현재 학계의 대세를 따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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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다소 뻔한듯한 논지 전개여서 좀 아쉬웠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학자 3명이서 같이 머리 맞대고 쓸 정도는 아니었던 듯 한데. 물론 논문의 부제처럼 이 논문은 북한 급변사태시 북한에 친중국 정권이 들어서고, 그때 연고권이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그 반대논리로서 사용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긴 하다. 논문의 목적이 전적으로 학술적인 것에만 있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는 눈감아줘도 되는 것인지...하는 생각을 가만 해본다.

일단은 소략한 기록을 곧이 곧대로 100%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고 여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정도로만 가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고조선-위만조선의 국가체계 또한 반농반목 형태의 유목국가와 비교했을때 정주국가에 더 가까웠을까? 하는 의문도 있기 때문에, 그런 고조선에게 있어 국경과 관방이라는 개념을 별 거부감없이 적용하는게 맞을까, 싶기도 하다. 이는 나중에 논고로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지금 공부도 부족하니 여기에서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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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eal 2015/07/29 19:39 # 답글

    역사학계가 군사학 문제를 너무 도외시하는 부분도 있다라는 느낌도 드네요. 하긴..전쟁사라는 개념 자체를 민간 역사학계가 제대로 본지도 얼마 되지도 않고 군사사학이라는 개념도 한국에서는 한국군내로 한정되어있는 학문이라는건 트랙백으로 포스팅을 작성했을때도 언급했지만 다시봐도 그런 느낌이네요.
  • Warfare Archaeology 2015/07/30 23:14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군사학, 전쟁사학 뭐 이런 개념들이 뚜렷하게 자리를 잡지 못 한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암튼, 저도 이 부분을 고고학적으로 어떻게 풀어볼까~~하고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이런 류의 논문들 말고는 참고할만한게 많지는 않네요. -_- 암튼 연구사적으로는 한줄을 장식해도 될듯 합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5/07/30 23:23 #

    아~그나저나 포스팅에 첨부된 고구려 성곽 지도는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출처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구려 산성으로 보지 않는 한반도 중부 지역의 산성들도 같이 표시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특정 학자의 견해가 적용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암튼 최근에 봤던 고구려 지도 중 가장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 Real 2015/07/30 23:46 #

    http://tadream.tistory.com/504

    여기서 확인하실수 있으실겁니다.ㅋ
  • Warfare Archaeology 2015/07/31 14:56 #

    지금 보니깐 그 지도는 고구려 게임 만드는 모임 같은데서 자료를 규합해서 만든 것 같았습니다.
    자료의 정확한 검증을 떠나서 지도가 깔끔한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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