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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의 축조시기는? 고구려사

현재 평양에 소재하는 안학궁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고구려 전기의 평양성, 그리고 고구려 말기의 별궁, 마지막으로 고려시대의 별도 등이 그것인데, 사실 저는 안학궁에 대한 연대 논란이 있다는 것을 대학교 3학년, 그러니깐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났을 때죠. 모 학회에서 주관하던 학술대회에 갔을때 일본인 학자(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가 그렇게 주장을 하자(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 학자는 그때 새로운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있었던 주장을 정리해 발표했던 것 같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몇몇 국내 학자들이 심하게(?) 반발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안학궁은 당연히 고구려 후기 도성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그 이후 몇몇 논문들을 살펴보고, 주변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쓴 이들도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어? 이거 생각 외로 심각하게 살펴봐야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 최근에 <고구려 기와>를 중심으로 안학궁 축조시기를 살펴본 논문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왕궁과 같이 기와가 다량으로 쓰이는 건물의 경우, 기와를 통한 편년은 매우 유의미하기 때문에, 고고학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은 둘러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논자는 먼저 그동안 고구려 기와로 알려진 것들을 싹 정리해서 분류를 합니다. 그렇게 분류된 고구려 기와는 총 3,200여점이고, 이를 몇몇 기준에 따라 선별합니다. 먼저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 검토를 통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와, 고구려 기와와 기술적 속성이 일치하는 집안 및 평양지역(수도권) 출토의 기와 등으로 세분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논자는 4장에서 고구려 기와의 특징을 일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기와의 문양과 제작기법(특히 접합기법)이 주된 분류기준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수막새 접합기법>의 경우, 기존에 명문과 문양의 변화만을 편년의 판단근거로 삼은 것에 더해 하나의 기준을 더 제시한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5장에서 안학궁의 고구려 기와에 대해 정리합니다. 먼저 기존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기 평양설의 근거 : 가장 기술적으로 발달한 <청회색>의 기와가 왕릉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적석총 및 도성유적에서만 사용된다. 즉, 청화색 기와가 출토되는 안학궁은 고구려의 전기 평양성이며, 태왕릉이나 장군총 조영 당시의 기와와 동시기로 판단된다.

2. 고구려 말기 별궁의 근거 : 집안지역 적석총에서 출토되는 복선연화문 수막새와 동형의 수막새가 안학궁에서 발견되지 않고,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 및 암막색와 같이 주연부에 연주문양이 표현된 것이 한반도에서 유행하는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이다.

3. 고려시대 별도의 근거 : 문양부가 있는 암막새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제작된다. 한편, 傳 만월대 출토 암막새가 안학궁 출토품과 문양 구성이 유사한데, 대동강 북쪽의 안학궁이 통일신라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해당 지역의 와당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려볼 수도 없고, 고려시대로 봐야 적절하다(부여 금강사지 출토 암막새와 비교해 이를 고려로 봤다고 하는데, 정작 금강사지 출토품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생략됐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이에 논자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와 고구려 기와의 일반적인 특징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합니다(고려시대 기와와의 비교가 이뤄지면 보다 정확한 안학궁 축조시기가 밝혀질텐데, 그건 추후 논고로 하겠다고도 하고요). 앞서 언급했듯이 논자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부분은 안학궁 출토 수막새의 문양적 특징과 제작기법상의 특징 2가지입니다. 

1. 문양

안학궁에서 출토된 수막새는 시문된 문양에 의해 주문인 연화문과 변간에 연꽃 변형문이 확인되는 <복합연화문 수막새>, 주문인 연화문양만 와당면에 배치된 <연화문 수막새> 이 2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복합연화문 수막새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고구려 복합연화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 연화문 수막새의 경우는 고구려의 것과 유사한 것도 있지만, 역시 다른 것도 있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2. 제작기법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수막새는 주로 3가지의 긁기에 의한 제작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논문의 중반에 언급되는데,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수키와를 와당부의 뒷면에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지 않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긁어내는 기법 1(복선연화문, 복합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뒷면을 일정한 폭을 가지는 도구를 이용해서 긁어내는 기법 2(복선연화문에서 확인), 와당부에 수키와를 접합하기 위해 단위를 가지는 빗상의 도구, 즉 다치구를 이용해 뒷면을 긁어내는 기법 3(권운문 수막새를 제외한 모든 수막새에서 확인) 이렇게 3가지 기법이 확인된다고 한다. 하지만 안학궁에서 확인된 수막새는 모두 와당부 뒷면에 동심원상의 병행하는 두 줄의 홈이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분명히 고구려의 일반적인 수막새와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앞서 문양만 놓고 봤을때 고구려 것과 비슷하다고 분류했던 것조차도 제작기법만 놓고 보면 분명히 고구려 것이 아니게 된다고 한다.

물론 논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안학궁에서 출토된 기와의 편년을 얘기한 것이므로 이것이 안학궁 축조시기와 100% 직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와는 처음 얹은 뒤 지속적으로 개보축을 하면서 수리해서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게 정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학궁에서 출토된 다수의 수막새의 제작시기가 고구려 멸망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분들도 한번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

해당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홍규, 2014,「고구려 기와의 분류와 특징에 관한 일고찰」『선사와 고대』41, 한국고대학회.

(파일 용량이 크다고 업로드가 안 되네요. 이런건 다음이나 네이버보다 확실히 이글루스가 불편한듯 합니다. T.T)


덧글

  • 삼국사기 오주갑인상 2016/12/27 08:47 # 답글

    풍납토성 심포지움에서 이희진 박사와 박순발 교수가 이견을 보였던 주제군요.
    이희진 박사는 고려 안학궁의 예를 들어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박순발 교수는 안학궁 초석 아래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고려 석실분이 나왔기 때문에 고려때 만든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박순발 교수는 안학궁의 암막새는 발해 전 시기에 걸쳐서도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는데, 그렇다면 안학궁은 왕고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할 듯하군요.
  • Warfare Archaeology 2016/12/27 14:27 #

    그것도 그렇고, 이미 학계 내에서는 안학궁의 축조시기에 대해서 고려시대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왔습니다. 박순발 선생님도 그중 한분이시구요. 다른 것보다 고구려 중기의 석실분을 파괴하고 그 위에 안학궁이 지어졌다는 점이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때문에 안학궁이 고구려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고구려 후기때 지어진 것(평양 천도와 무관한)으로는 보고 싶어 하시는데...좀더 관련 자료들이 축적되면 좋을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16/12/29 06:48 # 답글

    오랜만에 뵙습니다. 흥미로운 발제 감사합니다! 연말연시 따뜻하시길...
  • Warfare Archaeology 2017/01/02 00:11 #

    ㅎㅎㅎ 네, 저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 2017년 새해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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